크게 크게 작게 작게 메일
페이스북 트윗터
(시론)혁신성장을 위한 중기 R&D 지원정책
입력 : 2021-12-17 오전 6:00:00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경제성장 원동력은 혁신기술에 있다. 규모와 생산성이 중요하던 시대에는 설비투자 능력이 뛰어난 대기업이 성장의 주역이었다. 지금은 산업의 판도를 바꾸는 혁신적 기술의 개발에 모험을 거는 중소·벤처기업이 성장의 주인공이다. 
 
오늘날 전 세계시장을 주도하는 테크 기업들은 10여 전에 존재도 몰랐던 신생기업들이다. 전기차, 자율주행, 2차 전지, 전고체 배터리, 양자컴퓨팅, AI로봇, 메타버스, NFT, 백신·바이오, 우주탐사 로켓·위성 등의 첨단기술을 개발해 사업화하는 혁신기업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솟구치며 엄청난 기업가치를 자랑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는 중소기업 R&D 혁신을 국정과제로 채택해 중소기업의 기술개발을 정책적으로 지원해 주고 있다. 2021년 현재 중소기업 기술개발 지원은 크게 기업주도형 R&D, 협력형 R&D, 정책목적형의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해 시행되고 있다. 세부적인 내역사업은 녹색기술, 신재생에너지, 시스템반도체 설계 및 공정 기술, 스마트공장 혁신, 소재·부품·장비 양산 실증, 바이오·헬스, 미래차, 창업성장 기술개발, 지역 중소기업 혁신역량 제고, 소상공인 생활혁신형 기술개발, 소셜벤처형 R&D, 재도전형 R&D, 방역물품 기술개발 등을 망라한다. 
 
이처럼 R&D 지원사업이 많고 다양하다보니 R&D 정책의 초점이 불분명하고 정체성도 모호하다. 각 사업의 예산은 대부분 수십억원에 불과해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R&D 지원사업의 수가 많은 이유는 시류에 따라 R&D 지원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소재·부품·장비 양산 실증 지원이 대표적인 사례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따른 공급 부족 사태로 인해 갑자기 생겨난 지원사업이다.  
 
이와 같은 임기응변 식의 R&D 지원은 뒷북치기 대응을 벗어날 수 없다. 소재·부품·장비 양산 기술이 취약하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그동안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다가 현안으로 부각되니 급박하게 지원에 나선 것이다.  
 
상황 변화에 융통적으로 대응해 R&D 지원사업을 설정하는 것은 R&D 정책의 방향성을 훼손한다. 새로운 지원사업이 일단 생기면 없어지지 않고 남아 있어 시간이 지나며 R&D 지원사업은 누더기가 되고 R&D 정책의 목적도 잡다해진다. R&D 지원 노력과 자원도 분산돼 일관성있게 성과를 축적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의 R&D지원으로 결코 혁신성장에 기여하는 기술이 개발될 수 없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혁신과 성장이 일치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기술개발에 있어서 ‘혁신’과 ‘성장’은 상충적 관계를 가지며 동시에 둘 다 추구할 수 없다. 미래지향적 첨단 혁신기술은 수요가 특수해 시장이 작고 매출이 크지 않아 외형 성장을 달성하지 못한다. 매출 성장은 대중시장에서 나오며 여기에는 범용 양산기술이 필요하다. 이런 이유로 중소기업은 혁신기술 개발, 대기업은 양산기술 활용으로 상호협력하는 것이 바람직한 혁신성장의 모델이다. 미국 실리콘 밸리에서는 스타트업이 혁신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빅테크 기업들이 라이센싱하거나 M&A해 상용화함으로써 크게 키우고 있다.  
 
향후에 R&D 지원정책은 ‘혁신’과 ‘성장’을 조화시키는 방향으로 개편돼야 한다. 구체적으로 중소기업 R&D 지원을 △선도형 혁신기술 △추격형 도약기술 △성장형 개량기술 △회생형 전환기술의 네 가지로 분류하고 각각에 차별화된 R&D 지원체계와 추진전략을 적용할 것을 제안한다. 
 
선도형 혁신기술은 5~10년 후의 미래 시장을 내다보는 R&D로 장기간에 걸쳐 막대한 투자가 소요된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고비용 고위험 고수익의 R&D이기 때문에 성과는 불확실하나 성공하면 큰 보상이 따른다. 이런 R&D는 다년도 지원이 필요하다. 단계별로 진도 성과를 평가하고 이를 충족하면 지속적인 장기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선도형 혁신기술의 선정과 평가, 그리고 예산 배정은 기존의 R&D 관리 체계와 분리해 수행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과가 불확실한 R&D에 장기 지원이 가능하지 않다. 
 
추격형 도약기술은 선진국의 첨단 기술을 따라잡는 R&D로 기술 개발보다 양산 검증이 더 중요하다. 국내 중소기업이 기술은 갖고 있으나 양산 검증이 미흡하여 선진국 기업에 비하여 경쟁력이 떨어진다. 양산 기술의 검증을 위해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공동R&D가 유용하다. 양산에 필요한 검증용 테스트베드(test bed)를 대기업이 제공하며 이에 수반되는 비용과 위험을 정부가 지원해 주는 것이다.  
 
성장형 개량기술은 현재의 기술을 개선하고 고도화해 새로운 성장기회를 추구하는 것이다. 성장형 기술의 R&D지원은 개발된 기술의 사업화와 연계하는 것이 필요하다. R&D 개발비를 지원해 주고 일정기간 아후에 매출목표 달성 정도에 따라 다른 기술의 후속 개발비를 인센티브로 지원해 주는 것이다. 기술개발이 매출을 일으키고 그 성과가 다른 기술의 연구비로 환류되는 유인책을 제공하여 연구역량의 지속 강화와 기술력의 선순환 효과를 유발한다.  
 
마지막으로 회생형 전환기술 R&D 지원은 일종의 안전망(safety net)으로 영세기업이 생존하고 회생하도록 R&D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다. 사양업종에 속해 쇠락하는 중소기업의 사업전환 기술개발이나 사회적 기업 및 소셜벤처가 상업성있는 품목을 개발해 자생하도록 지원하는 것도 여기에 포함한다. 독자적인 연구인력과 연구시설이 미흡하므로 중소기업들이 공동으로 인력과 시설을 공유하며 기술을 개발하도록 지원해 주는 것이 효율적이다. 
 
위와 같이 차별화하여 중소기업의 R&D를 지원하면 다양하고 이질적인 중소기업의 기술수준과 성장잠재력을 반영하는 동시에 R&D 정책의 목적을 명확히 구분하여 수립하고 성과를 다각도로 측정하며 평가하여 혁신성장을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것이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보라 기자
SNS 계정 : 메일 트윗터 페이스북


- 경제전문 멀티미디어 뉴스통신 뉴스토마토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