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준익 기자] 국내 완성차업계가 내년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했다. 앞으로 허위 매물과 주행거리 조작 등 불투명한 시장에 검증된 현대차·기아 인증 중고차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인증 중고차는 제조사가 직접 중고차를 사들이고 검수해 판매하는 차를 말한다.
한 중고차 매매단지에 차량이 전시된 모습. 사진/뉴시스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은 지난 23일 서초동 자동차회관에서 열린 제15회 산업발전포럼에서 "국내 완성차업계는 내년 1월부터 사업자 등록과 물리적 공간 확보 등 중고차 사업을 위한 필요한 절차를 진행하는 등 중고차 사업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현재 중고차판매업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이 만료된 지 약 3년이 지나 완성차업체들의 중고차시장 진입에는 법적 제한이 전혀 없는 상황이다. 중고차 매매상들과 상생협력 방안을 찾기 위해 시장 진입을 자제해 왔지만 중고차업계가 합의 의지를 보이지 않아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는 게 완성차업체의 입장이다.
중고차 매매업은 2013~2019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돼 대기업 진출이 금지됐었다. 이후 2019년 11월 동반성장위원회가 생계형 적합업종 '부적합' 권고를 내렸지만 최종 결정권을 가진 중소벤처기업부가 지난해 5월 심의 기한을 넘겨 현재까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중기부가 양측 간 갈등만 키운 채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버렸다. 이제 중기부 생계형 적합업종 심의위원회 결정만 남게 됐다.
김주홍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상무는 "그동안 중고차업계와 협의하려 했지만 신차 판매권 요구 등으로 이루지 못했고 중기부도 심의위 열 생각을 안 한다"며 "현대차그룹과는 협의를 마친 상태로 나머지 르노삼성,
쌍용차(003620), 한국지엠도 회사 여건이 좋아지면 중고차 시장에 뛰어들겠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카이즈유 데이터 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1~11월 중고차 등록 대수는 361만대로 같은 기간 신차 등록 대수(159만대) 보다 2.3배 많다. 중고차 시장은 커지고 있지만 허위·미끼 매물 등으로 중고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이 팽배해 시민단체들이 시장 개방을 요구해왔다.
실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해 11월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중고차 매매시장에 대한 소비자 인식조사' 결과 응답자의 80.5%는 우리나라 중고차 시장이 허위매물, 주행거리 조작 등으로 불투명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 63.4%가 완성차 제조 대기업의 중고차 매매시장 진입을 찬성했는데 이유는 '성능과 품질 향상', '허위 매물 등 문제 해결' 등이었다.
앞으로 현대차·기아까지 인증 중고차 사업을 시작하면 시장의 투명성은 높아지고 거래 규모도 더 커질 전망이다. 이미 수입차 업체들은 인증 중고차 사업을 확대하고 나섰다. 수입차의 인증 중고차 매장은 100곳이 넘는다.
아우디는 지난 10월 광주광역시에 12번째 공식 인증 중고차 전시장을 열었고 볼보 역시 자사 비수도권 최초로 부산지역에 인증 중고차 서비스를 시작했다. 김포, 수원에 이어 4번째다. 수입차 업계 1위인 메르세데스-벤츠는 지난 9월 론칭한 '메르세데스 온라인 샵'을 통해 인증 중고차 온라인 판매를 시작했다.
김 상무는 "앞으로 미국이나 독일처럼 중고차 시장이 신차 대비 2배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라며 "중고차에 대한 적정한 가치를 보장해주고 신차 판매까지 연결되는 등 중고차 판매 방식이 다양해져 질 좋은 중고차를 구입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온라인 플랫폼 등장으로 투명성이 높아지고 중고차 구매 접근성이 강화되는 등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케이카는 2015년 업계 최초로 '내차사기 홈서비스'를 선보인 이래 3일 책임환불제 도입, 3D 라이브 뷰, 당일 배송, 24시간 셀프 결제 시스템 등을 구축했다.
엔카닷컴의 비대면 차량 구매 서비스 '엔카홈서비스'는 론칭 2년 만에 등록 매물 1만대를 돌파할 정도로 인기다. 엔카홈서비스는 구매를 원하는 차를 탁송 받아 7일간 직접 체험해본 뒤 구매를 결정할 수 있다. 엄격한 차량 진단을 통해 기준에 부합하는 무사고 차량이 대상이다. 온라인상으로는 확인이 어려운 담배 찌든 냄새, 스크래치까지 확인하는 엔카홈서비스만의 차량 검수 기준으로 정확한 차량 정보를 제공한다.
황준익 기자 plusik@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