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준익 기자] 자동차 업계가 전기차 가격을 놓고 고심에 들어갔다. 정부가 올해 전기차 보조금 100% 지급 상한액을 기존 6000만원에서 5500만원으로 낮췄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 5999만원인 전기차는 올해 보조금을 50%밖에 받지 못한다. 그만큼 소비자 부담이 커지고 판매 실적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보조금 축소에 따른 전기차 가격 책정이 그 어느 때 보다 중요해졌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부터 전기차 보조금 100%를 받는 차량 가격 기준은 기존 6000만원 미만에서 5500만원 미만으로 내려간다. 5500만~8500만원 차량은 보조금 50%를 지급한다. 8500만원 이상 차량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폴스타 2. 사진/폴스타 코리아
전기차 가격 인하를 유도하기 위한 조치다. 그동안 자동차 업체들은 정부 보조금 기준에 맞춰 전기차 가격을 책정해왔다.
국내 전기차 점유율 1위인 테슬라는 지난해 초 모델3(롱레인지) 가격을 6479만원에서 5999만원으로 내렸다. 보조금 100%를 적용하는 6000만원 미만에 맞추기 위해서다.
현대차(005380)그룹 역시 현대차 아이오닉 5의 최고 트림을 5755만원에 출시했고
기아(000270) EV6 GT-라인은 5980만원으로 보조금 상한선을 꽉 채웠다. 프리미엄 전기차인 제네시스 GV60와 메르세데스-벤츠 EQA도 5990만원부터 시작해 소비자 문턱을 낮췄었다.
지차별로 다르지만 1000만원 수준의 전기차 보조금을 절반만 받거나 못 받을 경우 소비자들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전기차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지난해 계약을 했는데 기다려야 할 지 취소해야 할지 고민"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결국 자동차 업체들은 전기차 판매 확대를 위해 가격을 5500만원 밑으로 낮출 가능성이 있다. 대신 옵션을 줄이거나 내부 소재 등 인테리어 등급을 기존 전기차보다 낮춰 가격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 보조금은 인증 받은 모델의 가격이 5500만원 미만이면 옵션에 상관없이 100%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100% 보조금 액수가 굉장히 크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가격을 맞출 것"이라며 "문제는 비용을 상쇄시키기 위해서 옵션을 뺀다든지 하면서 풍선효과를 만들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에 정부, 소비자, 시민단체들이 감시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반면 수입차 업체들은 브랜드 이미지를 고려하면 당장 가격을 낮추기는 어렵다는 분위기다. 업계에서는 오히려 옵션 등을 추가해 가격을 올려 고급화 전략으로 나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실제 테슬라의 경우 모델3(롱레인지) 가격을 6979만원으로 올렸다. 제네시스와 메르세데스-벤츠 역시 보조금 기준 보다 프리미엄 브랜드에 맞춘 가격으로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아직 출시되지 않은 수입 전기차 모델들이다. 올 초 출시를 예고한 전기차로는 폭스바겐 'iD4', 아우디 'Q4 e-tron', 폴스타 '폴스타 2', 볼보 'C40 리차지'와 'XC40 리차지', BMW 'i4' 등이 대표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보조금 축소는 사실상 국산 전기차에 유리할 수밖에 없다"며 "보조금 정책에 맞춰 1~2년 전부터 가격, 옵션 등을 정하고 인증도 받는 만큼 대중적인 모델이 아닌 이상 수입 전기차 가격 인하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당장 오는 18일 폴스타 2 사전계약을 받는 폴스타 코리아도 가격 책정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4만5900달러(약 5500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함종성 폴스타코리아 대표는 "매력적인 가격에 차량을 선보이겠다"며 "정부 보조금 정책에 맞춘 가격 정책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벤츠가 국내에서 EQA를 출시할 때 유럽보다 낮은 가격을 적용한 것처럼 폭스바겐 'ID.4' 등 5000만~6000만원 대 전기차도 비슷한 가격 정책을 적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현대차·기아의 전기차는 대부분 5500만원 이하다. 다만 배터리와 원자재 가격이 상승한 점은 변수가 될 수 있다.
황준익 기자 plusik@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