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준익 기자] 람보르기니, 페라리, 마세라티 등 이른바 슈퍼카 브랜드들이 기존의 내연기관 정체성 대신 전동화 흐름을 받아들이며 친환경차 시장에 본격 뛰어들고 있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람보르기니는 순수 내연기관 차량 출시를 올해로 마무리하고 내년부터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모델을 선보일 계획이다.
하이브리드로 전환을 위해 4년간 총 15억 유로(약 2조300억원)의 자금을 투자한다. 람보르기니 역사상 최대 투자 규모다. 람보르기니는 하이브리드 전환 이후 5년 뒤 브랜드 최초 순수 전기차를 출시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페라리 역시 2025년 전기차를 출시할 계획이다. 현재 페라리는 라인업에 PHEV 모델을 운영 중이다.
2019년에 출시한 페라리 최초의 PHEV 슈퍼카 'SF90 스트라달레'와 2020년 선보인 컨버터블 버전 'SF90 스파이더', 그리고 이달 세 번째 PHEV 스포츠카 '296 GTB'를 출시했다. 296 GTB는 전기모터(167마력)와 V6 터보엔진(663마력)의 결합으로 총 830마력을 발휘한다. 페라리는 올해까지 판매되는 모델의 60%를 하이브리드로 채울 방침이다.
2019년~2021년 슈퍼카 브랜드 국내 판매 추이. 그래픽/뉴스토마토
마세라티의 경우 지난해 7월 '기블리 GT 하이브리드'에 이어 SUV '르반떼 GT 하이브리드'를 선보였다. 마세라티는 올해 4분기 중형 SUV '그리칼레' 전동화 모델도 출시하는 등 내년부터 모든 제품군의 순수 전기차 버전을 내놓을 계획이다.
2019년 첫 전기 스포츠카 '타이칸'을 선보이며 빠르게 전동화에 나선 포르쉐는 2025년까지 모든 제품의 50%를 전기차 또는 PHEV로 채우기로 했다. 내년 중형 SUV '마칸' 전기차 모델도 출시할 예정이다.
그동안 슈퍼카 업체들은 브랜드 정체성 때문에 전동화를 꺼려왔다. 또 배터리 기술이 아직 슈퍼카의 요구를 만족시킬 정도로 올라오지 않았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잇달아 내연기관 생산 중단을 선언하고 전기차를 내놓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수익성 악화에 시달렸던 포르쉐가 '타이칸' 출시로 재기에 성공한 것도 전동화를 부추겼다.
슈퍼카는 환경기준이 높은 유럽이 주요 시장인만큼 내연기관 엔진만 고집하면 판매 자체가 불가능진다는 위기의식도 전동화 전환 요인으로 분석된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엔진 특성을 가지고 브랜드 이미지가 극대화된 슈퍼카 업체들이 이제는 친환경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판매 자체가 심각할 정도로 환경 규제가 강화됐다"며 "전기차까지는 아니어도 하이브리드차가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한 만큼 고급 프리미엄 브랜드 위치도 이제는 바뀌어야 된다"고 말했다.
페라리 296 GTB. 사진/페라리
슈퍼카 업체들의 전동화 전략에 따라 이제는 100년 넘게 내연기관에서 쌓은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를 전기차에서도 이어 갈 수 있을 지가 관건이다.
업계에서는 하이브리드차는 엔진이 적용되기 때문에 경쟁력이 있지만 전기차의 경우 엔진, 변속기가 아닌 배터리, 모터 기술력이 중요해 슈퍼카 브랜드 명성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히려 전기차는 테슬라처럼 새로운 브랜드가 주도권을 잡을 가능성이 높은 시장이라는 분석도 있다.
김 교수는 "현재 메르세데스-벤츠나 BMW도 전동화 과정에서 브랜드 이미지 유지에 고민이 많은데 슈퍼카 브랜드는 더 어렵다"며 "도리어 새로운 브랜드에 개천에서 용 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크로아티아의 고성능 전기차업체 리막은 올해 한국 시장에 1900마력이 넘는 전기 슈퍼카를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리막은 크로아티아 발명가 마테 리막이 2009년에 설립한 신생 전기차 업체로 포르쉐, 현대차그룹이 투자했다. 최근에는 부가티와 합작회사를 세웠다.
국내에 출시될 리막의 첫 전기차는 네베라가 될 전망이다. 최고 출력이 1900마력에 달하고 가격은 약 28억원이다. 리막과 손잡은 부가티 역시 페라리, 람보르기니가 순수 내연기관을 포기하고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개발 방향을 튼 것처럼 같은 길을 걷게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황준익 기자 plusik@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