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아픈 가족을 돌보느라 학업과 진로 등을 포기하는 처지에 놓인 가족 돌봄 청년(영 케어러)들을 지자체가 발굴·지원한다.
서울 서대문구는 17일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가족 돌봄 청년 시범사업을 전국 최초로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서대문구는 보건복지부의 가족 돌봄 청년 지원대책 수립 방안에 따른 시범 자치구로 선정돼, 실제 현장에서 영 케어러에 대한 실태조사와 발굴, 지원방안 모색 등을 진행한다.
영 케어러는 가족의 부상이나 질병, 노환 등으로 인해 청소년 또는 소득이 없는 대학생 등이 가족의 부양, 가사노동 등을 책임지는 상황을 뜻한다.
기존 가족 형태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영 케어러들은 의료비 가중, 간병 부담, 정서적 고립감 등의 어려움을 복합적으로 겪는다.
지난해 대구의 한 20대 청년은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홀로 부양하다 부담감을 이유로, 급기야 아버지를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 당시 이 청년은 고된 간병 노동을 홀로 감당하는 것은 물론 수술·병원비를 마련하려고 아르바이트까지 했지만, 가스비와 전기요금까지 연체되는 생활고에 시달렸으며 아무런 복지 혜택을 받지 못했다.
서대문구가 지난해 12월 진행한 선제적 발굴조사에서도, 단전·단수·월세 체납 등의 경험이 있는 9~24세 청소년과 청년 거주 1071가구 가운데 35가구가 영 케어러로 나타났다. 서대문구에 사는 대학생 A(23·여)씨는 청각장애가 있어 혼자 외출이 어려운 할머니, 지적·뇌병변장애를 갖고 있는 언니를 돌보며 아르바이트로 겨우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
B(24·남)씨는 유일한 가족인 어머니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고 척추협착증으로 거동이 불편한 상태로, B씨 혼자서는 어머니를 돌보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서대문구는 이들 35가구에 심층상담을 실시해 상황에 맞춰 공적급여를 지급하거나, 복지바우처·돌봄서비스 지원, 복지관·후원금 연계 등 53건의 복지서비스를 제공했다.
서대문구는 영 케어러들을 툭성과 위기상황별로 구분하고, 모두 80여종의 경제·고용·의료·주거·돌봄 지원을 맞춤형으로 받을 수 있도록 통합 매뉴얼을 제작해 각 주민센터에 배포했다. 또 세브란스병원, 강북삼성병원 등과 협력해 퇴원환자들이 공백없이 바로 복지체계로 이어지도록 퇴원환자 연계사업을 확대하고 연계병원도 요양병원까지 늘릴 예정이다.
서대문구는 서부교육지원청, 중·고등학교와 협력해 연계체계를 구축한다. 마을변호사나 행정사도 연결해 영 케어러들이 행정·법률 업무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영 케어러들을 위한 정서적 안정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가사간병서비스와 노인맞춤돌봄서비스를 시행한다.
앞으로 서대문구는 관련 조례를 마련하고, 중고생, 학교 밖 청소년, 일하는 청년 등 34세까지 범위를 넓혀 영 케어러의 규모와 실태를 파악할 예정이다. 이번 서대문구의 시범사업 결과는 전국 확산 모델의 바탕이 된다.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은 “신청하는 자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개념에서 벗어서 도움이 필요한 곳을 발굴하고, 맞춤형 복지정책을 연결해 사각지대를 줄이고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이 17일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가족 돌봄 청년 시범사업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서대문구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