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SH공사가 공공주택을 지으면 민간보다 품질이 더 좋아야죠. 그렇게 지은 공공주택을 시민들이 와서 보고 살지 말지 결정하도록 소비자에게 선택권을 주겠습니다.”
지난달 28일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집무실에서 만난 김헌동 사장은 기존 임대주택 용어를 공공주택으로 대체하는 것을 시작으로 낡은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임대주택 거주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SH공사가 오랜 기간 갖고 있는 숙제 중 하나다. 과거 공공임대주택 거주자를 낮잡아 보는 잘못된 풍조가 형성되면서 ‘임대 거지’란 용어까지 탄생했다. 특정 지역에 임대주택을 공급한다고 하면 반대하는 주민들이 집회까지 여는 일이 빈번했다. 이는 전체 SH공사의 주택 브랜드 저하까지 불러왔다.
김 사장은 “타워펠리스에 자가 비중이 절반밖에 안 된다고 임대주택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임대주택이 법적용어라 완전히 안 쓸 수는 없지만, 부정적 인식이 많기 때문에 대신에 공공주택을 사용하고 있다”며 “근본적으로 땅이나 건물을 빌려주고 빌려가는 사람은 갑을이 아닌 대등한 관계”라고 말했다.
김헌동 SH공사 사장이 지난달24일 서울 강남구 SH공사 본사에서 취임 100일 출입기자간담회 및 강남지역 분양원가 공개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사전청약 아닌 다 지은 집 보고 입주 결정
SH공사는 공공주택을 도입하면서 현재 공정률 60~80% 수준으로 공급하는 기존 후분양제를 확대해 공정률 90% 시점에 입주자를 모집할 계획이다. 1970년대 이후 분양시장에 고착화된 선분양제를 타파해 실제 주택 입주자인 소비자에게 선택권을 돌려주는데 앞장선다. 90% 수준의 후분양은 공공은 물론 민간에서도 흔치 않다.
후분양제가 확대되면 입주자는 모델하우스가 아닌 다 지어진 집을 눈으로 보고 직접 만져보며 입주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입주자 입장에선 직접 확인한 주택에 살면서 만족도를 높일 수 있으며, 공급자 입장에서도 입주자를 충족시키기 위한 다양한 형태의 주택을 만드는데 집중하게 된다.
김 사장은 “휴대전화나 자동차도 다 만들어진 걸 확인해보고 비교해가며 사는데 유독 몇 억원이나 하는 집을 물건없이 선물거래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정부도 말로만 후분양한다고 하고 사전청약 같은 선선분양할 게 아니다. 공급이라는 건 필요한 사람이 당장 들어갈 수 있어야 공급”이라고 강조했다.
서울형 건축비 도입, 100년 사는 공공주택
SH공사는 김 사장 취임 이후 서울형 건축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기존에는 임대주택에는 표준 건축비 3.3㎡당 300만~400만원의 표준 건축비를 기준으로 짓고, 분양주택에는 기본형 건축비를 약 600만원에 짓다보니 ‘임대주택이 품질이 낮다’는 고정관념이 형성됐다.
서울형 건축비는 분양·임대 상관없이 SH가 공급하는 공공주택에 3.3㎡당 800만원 이상의 건축비를 적용하는 방안이다. 이를 통해 더 비싼 설계, 더 비싼 자재, 더 비싼 건설기법을 공공주택에 사용해 민간 못지 않은 수준의 고품질 공공주택이 가능하고, 30~50년 사용 가능한 주택이 아닌 100년 이상 쓸 수 있는 주택을 만들 수 있다.
김 사장은 “아파트 뼈대가 되는 콘크리트도 고강도 콘크리트를 쓰면 기둥 두께를 줄일 수 있고 사용 면적이 커진다. 설계지침이나 기준에 반영해 층간소음을 줄일 수도 있다”며 “집이라는 건 사람사는 공간인데 뼈대부터 튼튼하게 지어 100년 갈 수 있는 주택을 만들면 SH가 지은 집을 더 선호하도록 바꿀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당연히 건축비를 많이 투입하면 전체 분양가가 올라간다. 이 공식을 깨기 위해 김 사장이 추진하는 모델이 ‘건물만 분양’ 아파트다. 토지는 SH공사가 소유한 채 건물만 분양해 실분양가를 낮추는 방식이다.
김 사장은 최근 고덕강일, 오금항동, 강남세곡 등 취임 이전에 공급한 SH공사 아파트에 대한 분양원가를 잇달아 공개하고 있다. 이 과정을 통해 분양 과정에 껴 있는 거품을 드러내고 향후 건물만 분양 아파트를 도입할 경우 예상 가능한 분양가도 추정할 수 있다.
김 사장은 “지금 25평이 건축비 1억5000만원인데 서울형 건축비로 2억5000만원을 들여 짓더라도 비강남권엔 3억원에 팔면 5000만원이 남는다. 강남권에는 시세와 토지비를 감안해 한 4억~5억원을 받겠다”며 “건물만 분양을 ‘반값 아파트’라고 하는데 반의 반값 수준으로 공급 가능하며, 이미 준비는 다 돼 있기 때문에 정부나 새 대통령이 대규모 물량 공급을 약속한 상황에서 물량 걱정은 하지 않는다”고 얘기했다.
김헌동 SH공사 사장이 지난달 28일 SH공사 집무실에서 <뉴스토마토>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SH공사)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