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효선 기자] 검사가 공소제기 시 피고인과 변호인에게 증거를 ‘의무적’으로 교부할 수 있도록 형사소송법 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21일 오후 변호사회관에서 '검사의 피고인에 대한 증거기록 제출 관련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발표자로 나선 정병욱 서울변회 인권이사는 “피고인이나 변호인의 서류 등 열람, 등사, 목록 교부는 검사의 교부의무로 바뀌어야 한다”며 이를 형사소송법 개정에 반영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 이사는 “현행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비용과 인력을 들여 등사하는 것은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해석에 반한다”며 “궁극적으로는 피고인 및 변호인에 대한 공소제기 전 증거개시 제도는 폭넓게 인정되고 국가의 의무로 규정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형사소송에도 민사소송처럼 전자소송이 도입 된다면 신청인 측에서 비용이나 인력을 들이지 않고도 출력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아직까지 전자소송이 도입되지 않은 이상 여전히 신청인 측의 비용이나 인력이 상당히 소모되고 있으므로 등사는 이제라도 비용이나 인력을 국가가 지급하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검사가 피고인 등의 열람·등사 요청을 거부할 수 있는 사유가 광범위해 방어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김민규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검사가 증거가치가 없다고 판단해 개시하지 않은 증거나 증거개시에 따른 폐해 방지를 위해 열람·등사를 제한하고 있는 자료 중에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가 포함돼 있을 가능성도 있다”며 “피고인 측으로서는 이러한 자료에 대해 검토하고자 할 것이나 법원에 해당 자료의 열람·등사를 허용하도록 명할 것을 신청하는 것 외에는 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고, 검사가 법원의 결정에 반해 증거공개를 계속 거부하더라도 이를 공개하도록 할 방안이 전혀 규정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 부연구위원은 “증거개시 제도의 도입 취지를 고려해 현행법의 문제점에 대한 학계와 실무계의 지적을 검토하고 증거개시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는 입법적 대안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형사소송법 266조의3 2항에 따르면 검사는 국가안보, 증인보호의 필요성, 증거인멸의 염려, 관련 사건의 수사에 장애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는 구체적인 사유 등 열람·등사 또는 서면의 교부를 허용하지 않을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열람·등사 또는 서면의 교부를 거부하거나 그 범위를 제한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현행 형사소송법은 공소제기 이후의 증거개시만을 규정하고 있고 공소가 아직 제기 되지 않은 단계에서 수사기록 등을 열람·등사할 수 있는 방법은 규정돼 있지 않다”며 “그렇다면 앞으로 검사가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도 공개할 의무를 부과하는 입법이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핵심 증거와 피의자, 피해자 및 고소인, 증인 등의 사건관계인의 진술을 최초로 기록으로 작성하는 사법경찰관에게도 동일한 의무를 부과하지 않는 이상 실질적으로 실현이 가능한지 의문스럽다”고 꼬집었다.
그는 “피고인에게 불리한 증거뿐 아니라 유리한 증거를 공개하도록 검사에게 요구하기 위해 검사에게 객관의무가 있음을 법률로 명확히 하는 한편 이러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중요 증거를 개시하지 않거나 또는 법원의 열람·등사 등의 허용 결정 이후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일정한 제재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6대 범죄가 아닌 일반적인 범죄의 수사에 있어서 검사는 수사를 지휘할 수 없게 됨에 따라 경찰의 수사기록 및 증거 송치를 신뢰함으로써, 즉 고의나 중대한 과실 없이 증거개시를 하지 못한 경우에 대해서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증거개시를 공소제기 전의 수사단계로까지 확대하는 입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권영빈 법무법인 한결 변호사도 “형사소송법을 개정해 1회 공판기일 전 검사가 피고인에게 증거 기록을 송부 또는 교부하도록 의무화하는 규정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통해 판사의 예단 배제 효과를 그대로 살리되(공소장일본주의) 당사자 대등주의와 공판 중심주의를 강화하고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함과 신속한 재판도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진국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의 증거기록 열람등사제도가 매우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피의자나 피고인 등의 형사사법절차상 권리 보장을 강화하기 위한 ‘형사절차전자문서법’ 제정안이 (2024년 10월 말부터) 시행되면 형사사법절차에서 문서의 작성과 제출, 관리, 유통이 완전 전자화됨으로써 종이기록 사용으로 인한 문제점들이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형사소송법 266조의3은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형사절차전자문서법이 시행되더라도 피고인이나 변호인은 공소제기 후 검사가 보관하고 있는 증거기록에 대한 열람등사를 신청해야 하고, 이 경우 열람등사를 제한하는 사유가 광범위한데다 형사소송법은 검사에게 증거기록의 열람등사 강제할 마땅한 수단을 갖추고 있지 못한 상황”이라며 “형사절차전자문서법은 열람등사가 허용된 상황에서 증거기록을 보다 더 편리하게 열람 사할 수 있는 장점을 제공해줄 뿐 증거기록 열람등사의 제한이나 열람등사의 강제 문제는 남아있다”고 덧붙였다.
서울변회. 사진=뉴스토마토
박효선 기자 twinseve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