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홍연 기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5차 평화협상에서 러시아가 군사 활동을 축소하겠다고 발표하고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가 논의되는 등 급진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미국 등 서방 지도자들은 러시아의 행동을 좀 더 지켜봐야 진의를 파악할 수 있다는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협상 전망에 대해 엇갈린 의견이 나왔다.
29일(현지시간)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협상 이후 알렉산드로 포민 러시아 국방차관은 "키이우와 체르니히우 지역에서 군사 활동을 대폭 줄일 것이며, 이는 즉각 실시된다"고 발표했다. 주요 외신은 협정 체결을 위한 정상회담이 거론되는 등 외신들은 건설적인 논의가 오가며 상당한 진전을 이룬 것으로 평가했다. 다만, 즉각적인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아 러시아의 행보가 또 다른 전술일 수 있다는 신중론도 고개를 들었다.
러시아 측 협상단 역시 군사 활동 축소가 휴전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협상단을 이끄는 블라디미르 메딘스키 러시아 대통령 보좌관은 "이것이 휴전을 의지하진 않지만, 우리의 의도는 적어도 이 방향에서 점진적으로 갈등을 완화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이날 러시아의 군사 작전 축소 발표 이후에도 키이우 주변에서 포격 소리가 이어졌다. 현지 특파원은 "키이우에서 15~25km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포격이 이어졌다"며 "러시아가 아직은 키이우 주변에서 군사 작전을 실제로 줄이지 않은 듯하다"고 지적했다.
백악관과 미국 국방부 역시 러시아의 전술적 변화일 수 있다며 신중한 태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케이트 베딩필드 백악관 공보국장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누구도 러시아의 발표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라면서 "우리는 키이우를 둘러싼 모든 움직임이 철수가 아니라 재배치라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보다 앞서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와 회담한 뒤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의 발표에 대해 "지켜보겠다. 그들이 행동에 나서는 것을 볼 때까지 어떤 것도 예단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측도 경계를 늦추지 않고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5차 협상이 끝난 뒤 발표한 화상 연설에서 "러시아의 입장은 긍정적이지만 군사 작전을 축소하겠다는 러시아의 주장을 믿을 이유가 없다"면서 "러시아의 포격은 줄어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러시아군은 공격을 계속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으며, 우리는 방어 노력을 줄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엇갈린 전망이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러시아군이 재공세를 앞두고 전열을 가다듬기 위해 기만전술을 펴고 있다고 전문가를 인용해 보도했다. 영국 킹스칼리지런던의 로렌스 프리드먼 석좌교수는 "군사 활동 축소는 후퇴를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러시아는 목표를 현실에 맞추고 있는 것"이라면서 "돈바스 지역에 집중하겠다고 말하는 건 실제로 그들이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러시아 정치학자인 키릴 로고프는 "5차 협상이 전쟁의 전환점이 될 수 있으며 이번 협상을 계기로 러시아가 전쟁 규모를 단계적으로 축소할 것이다"고 전망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의 전선에 29일(현지시간) 러시아군 장갑차와 차량 잔해들이 방치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홍연 기자 hongyeon1224@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