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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의 슬픔과 기쁨
입력 : 2022-04-16 오후 3:31:18
재택근무 대신 출근을 시작하는 기업들이 생기면서 남성 정장 수요가 늘고 있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위치한 남성 정장, 의류 매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미국과 유럽 주요 기업들이 코로나19 방역 조치를 잇달아 완화하고, 재택근무 권고 지침을 종료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엔데믹 시대를 앞두고 많은 직원이 사무실로 복귀해 곧 직면하게 될 회의와 회식에 대해 달갑지 않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부 기업은 직원들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사무실 근무의 장점을 살리고 재택근무 단점을 보완한 '거점오피스'를 내세우고 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재택근무가 일상으로 자리 잡은 가운데 개개인의 사정과 회사 내 지위, 업무 특성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모양새다. 
 
재택근무를 선호하는 직장인들이 만족도가 가장 큰 이유는 우선 출·퇴근 시간이 절약되고, 붐비는 시간에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한 지옥철에 탑승하면 업무를 시작하기도 전에 에너지를 소진하고, 퇴근길에 이를 한 차례 더 경험하면 집에 와서 아무것도 못 하고 그냥 쉬고 싶은 생각만 간절하다. 에너지 소진을 막고, 증진된 체력으로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사람'이 주는 스트레스도 적다. 사무실에서 공적인 자아로 일하다 보면 오며 가며 끊임없이 사람을 상대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신경써야 할 일도 많고, 대인 관계에서 파생하는 스트레스에 노출될 일도 더 많다. 그냥, 계속, 쭉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고역인 자유로운 영혼들도 있다. 업무 외에도 점심시간에 부장님 비위 맞추고 후배 눈치 살피는 일이 없어서 식사 시간이 쾌적해졌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자율적인 시간 운용으로 효율성이 증대됐다는 의견도 있었다. 사무실에 앉아 있는 내내 업무를 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집에서 최대한 집중력을 끌어 올려 일을 빨리 끝내놓고 휴식 하거나 밀린 집안일을 하니까 시간을 더 번 느낌이라는 것이다. 점심시간에 단지 내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거나 낮잠을 자고 오면 컨디션이 더 좋아질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재택근무할 때 점심시간에 밥을 먹고 주로 산책을 했는데, 낮 햇볕을 쬐며 잠시나마 한량이 된 듯한 해방감(?)이 좋았다.   
독거 청년인 나와 다르게 가정이 있는 분들의 사정은 좀 달랐다. 코로나19로 아이들이 어린이집이나 학교를 가지 않자 직장업무에 육아까지 떠안으며 '이중고'를 겪는다는 것이었다. 집에서 분명히 일하는 건데도 눈치가 보이고, 아이들도 나 몰라라 할 수 없어 차라리 직장에 가서 일하는 게 훨씬 업무 효율도 높고 마음도 편하다고 했다. 가끔 취재원분들과 통화할 때 아이가 울거나 그분을 찾는 목소리가 들리면 소리로나마 그 고충을 짐작해볼 수 있었다. 
 
세대별로도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뉜다. 나이가 지긋한 임원들은 재택근무가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딴짓'의 빌미를 제공하는 거라 생각하기도 한다. 또, 가뜩이나 컴퓨터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데 화상회의를 한다거나 메신저로 주고받는 수많은 파일과 여러 프로그램은 피로감을 가중시킨다. 고층의 좋은 뷰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몸에 안착되는 큰 의자에 앉아 보기 편하게 정리된 서류들을 보고받을 때가 좋았단 생각이 들만하다. 
 
회사 다니는 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재택 권고에도 팀장급 이상은 굳이굳이 회사에 나온다고 한다. 이유를 물으면 '나와서 일하는 게 더 편하기 때문'이란다. 컴퓨터에 뭐 깔고 이거저거 보고 이해하고 이러는 것보다는 그냥 출근하는 게 더 낫다는 것이다. 물론 디지털의 편리함에 눈을 떠 온라인 시장에 새로운 소비 주역으로 떠오른 중장년층도 있겠지만, 많은 이들은 아직 디지털에 친숙하지 않다. 또 더 높이 올라가고 싶은 분들은 더 윗분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고. 
 
국내 대기업의 익명 사내 게시판에서 재택근무 찬반 논란이 벌어지고, 해외에선 애플의 일부 직원들은 사무실 복귀에 반발하며 팀 쿡 CEO에게 공개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서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진다는 것처럼 내가 CEO냐, 직원이냐에 따라 재택에 대한 태도도 달라질 듯 하다. 재택근무 여부에 따른 생산성은 업무 속성에 따라 다르고, 사람마다 처한 상황도 상이해 딱 떨어지는 답이 없다는 게 아마 제일 어려운 지점인 것 같다.
 
 
홍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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