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진양 기자] 지난해 주요 게임사들은 경쟁적으로 연봉 인상을 단행했다. 코로나19로 디지털 포메이션이 가속화되면서 개발자에 대한 수요가 높아졌고, 높은 임금으로 인력 유치에 나선 것이다. 이 같은 추세는 빅테크 기업으로도 번져 산업계 전반의 트렌드가 됐다. 하지만 크게 불어난 인건비는 기업의 발목을 잡는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높아진 몸값을 사업 실적이 받쳐주지 못해 수익성이 악화된 까닭이다.
지난 21일 네이버는 '어닝쇼크'를 기록했다. 올 1분기 매출 1조8452억원, 영업이익 3018억원으로 각각 집계됐는데, 시장 전망치를 크게 하회했다. 주 원인은 인건비와 마케팅비의 증가로 지목됐다. 인건비와 복리후생비가 15.2% 증가한 3812억원을, 마케팅비가 30% 늘어난 2224억원을 기록했다.
김남선 네이버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실적발표 후 열린 컨퍼런스 콜에서 "훌륭한 인재확보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본격적인 채용을 진행한 결과 전체 인원 수가 전년 대비18% 증가했다"며 "노사간 합의한 10% 임금인상 소급 적용 효과도 반영됐다"고 비용 증가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올해부터는 공격적 채용 정책 유지 필요성 등을 좀 더 면밀히 살펴보겠다"며 비용 통제 계획을 시사했다. 채용 규모를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관리해 지난해처럼 인력이 급격히 불어나는 일은 없을 것이란 전망이다.
다음달 4일 실적 발표를 앞둔 카카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을 전망이다. 카카오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카카오 직원 수는 3472명으로, 이들에게 지급된 급여 총액은 5177억원에 달했다. 1년 전보다 직원 수는 600여명 늘었는데 인건비 규모(2924억원)는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평균 급여도 1억800만원에서 1억7200만원으로 대폭 인상돼 업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카카오는 올해에도 연봉 총액을 15% 더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증권가에서는 카카오의 1분기 매출이 1조7403억원, 영업이익이 1616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연봉 인상 릴레이를 촉발했던 게임업계의 실적 전망도 밝지만은 않다. 다수의 게임사들이 지난해 1분기 어닝쇼크를 기록했던 탓에 기저효과로 매출과 이익 개선은 나타나겠지만 2020년의 호실적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18일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IT위원회 웹젠지회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 웹젠 본사 앞에서 '김태영 웹젠 대표이사 대화촉구 및 쟁의행위 예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뉴스토마토)
연봉 인상의 후폭풍은 실적 악화뿐만이 아니다. 웹젠은 다음달 2일부터 파업에 돌입한다고 예고했다. 배경에는 처우에 대한 불만이 자리잡고 있다. 웹젠 노조 측은 "(공시에 따른) 웹젠 연봉은 7000만원 수준이지만 실제 평균 연봉은 5000만원도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앞서 웹젠 노조는 지난해 1월 임금 교섭에서 사측에 연봉 일괄 1000만원 인상을 요구했지만 사측은 평균 10% 인상을 제시했다. 지난달 노조는 평균 16% 인상과 일시금 200만원의 수정안을 냈지만 사측은 평균 10%인상과 평가 B등급 대상 직원에만 200만원 지급을 제안했다. 이를 거부한 웹젠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면 게임업계 최초 사례가 된다.
지난해 연봉 1200만원 일괄 인상에 나섰던 베스파는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상장폐지 위기에 몰렸다. 최근 3사업연도 중 2사업연도에 각각 자기자본의 50%를 초과하는 법인세비용차감전계속사업손실이 발생해 관리종목으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에는 대대적 인력 조정에 나서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구직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진 상황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며 "재원이 받쳐주는 곳에서는 복지 강화 등으로 연봉 인상으로도 채워지지 못하는 부분을 만족시키겠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인력 유출과 성장 정체 등의 악순환에 빠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