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서초동 삼성사옥 주변 모습. (사진=연합뉴스)
"회식 좋아하세요?"
이 질문에 바로 '좋다'란 대답이 나오면 최소 부장급 이상, '잘 모르겠다'면 과·차장급, '싫다'면 대리·사원급이라는 학계 정설이 있다. 거리두기 해제로 벌써 '보복회식'을 우려하는 많은 직장인의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코로나19로 그간 회식이 없거나 있더라도 점심 시간대, 식당 영업시간에 따른 짧은 저녁 회식이었다면 이제 다시 옛날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재택하면서 회사 업무에만 집중하면 됐던 지난날과 달리 이제 업무가 끝난 뒤 또 다른 감정노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 피로감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윗사람들이 회식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면 '주체성'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자기가 먹고 싶은 걸 먹고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데 '잘했다', '잘났다' 맞장구쳐주는 좌중까지 있으니 금상첨화 아닌가. "김 대리 자네 생각은 어떤가" "요즘 힘든 일은 없고"로 시작했던 회식은 결국 기승전 자기 자랑, 일장연설 내지 "라떼는..."으로 끝나버리니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을 찾기 힘들다는 게 합리성을 중시하는 MZ세대의 중론이다.
장성한 자녀가 있거나 홀로 사는 중역들은 집에 가도 할일이 별로 없지만(비즈니스 업무 제외) 한창 아이를 키우거나 짬 나는 시간에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 직원들에겐 저녁이 너무 소중하다. 아이와 한 번이라도 더 눈을 맞추고 대화하거나 자기 계발을 통해 자기효능감을 높이는 시간일 수 있다. 예전에 친구들과 '왜 상사들은 회식을 좋아하나'란 주제로 대화한 적이 있는데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그 나이대 되면 집 가서 뭘 하든 인생이 크게 바뀔 것도 없고 그냥 고된 일상을 비위 맞춰주는 사람과 가장 즉각적인 방식으로 털어내는 것"이라고.
누군가는 그런 '감탄고토' 같은 사고방식으로 어떻게 사회 생활을 하겠느냐, 상사도 진짜 회식이 좋아서 하겠느냐, 직장에서 부대끼는 것 외에도 같이 오래 보고 진솔한 얘기를 나눠야 하지 않겠느냐란 반론을 할 수도 있다. 나도 살짝 젊은 꼰대라 그런지 회식은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구성원간의 결속과 화합을 도모하는 자리는 결코 술과 밤에서 기인하지 않는다. 오히려 멀쩡한 정신이어야 불만이 있으면 조목조목 잘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저녁이 있는 삶을 상큼하게 보낸 뒤 점심이나 근무 시간을 이용한 회식은 '가욋일'이란 생각이 들지 않아 좋다. 결국 회식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어떤 분위기에서 어떻게 이뤄지느냐가 관건이다. 편한 분위기에서 직원 취향을 존중해 평소 자기 돈 내고 사 먹기 아까운 것을 먹는다면 모두가 환영하지 않겠나.
'자율성'을 존중해주는 것도 필요하다. 회식 일정을 고지한 뒤 의사를 묻고 참여하고 싶은 사람만 참여하도록 하는 건 어떨까. 코로나19로 억눌렸던 대면 교류 욕구가 폭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굳이 필요한 경우 아니면 비대면을 선호해온 사람이 있다. 아무도 참석을 원하지 않는 회식이 있다면 주최자는 자신의 평소 인품과 회식 방식에 대해 한번 고찰하는 계기로 삼으면 된다. (상사 눈치가 보여 이런 경우는 거의 없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