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오후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초청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적 공감대를 전제로 사면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다음달 8일 석가탄신일을 계기로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정치·경제인에 대한 사면을 단행할지 관심이다. 청와대 내에서는 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사면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으로 평가하며 사면 여부와 대상을 알아보기 위해 각계각층의 의견을 두루 듣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원칙을 중시하는 문 대통령 성향을 고려하면 지극히 원론적 발언으로 봐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문 대통령은 지난 25일 청와대 녹지원에서 진행된 출입기자단 초청행사에서 "사면의 요청이 각계에서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경수 전 경남지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사면 요청을 종교계 등 여러 분야로부터 받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문 대통령은 "사면은 대통령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국민들의 지지 또는 공감대 여부가 여전히 따라야 할 기준"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사면으로 사법정의를 보완할 수 있을지, 사면이 사법정의에 부딪힐지 판단은 전적으로 국민들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 발언의 요지는 국민적 공감대를 전제로 대통령 고유권한인 사면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문 대통령이 사면 여부를 완전히 배제하지 않은 채 '국민적 공감대'라는 기준을 다시 꺼낸 것만으로도 사면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에 대해서도 '국민적 동의'를 기준으로 내세우며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다가 지난해 말 전격 사면했다. 수석들도 모를 만큼 문 대통령의 독자적 결단이었다. 물론 배경에는 급격하게 나빠진 박 전 대통령의 건강 상태가 있었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문 대통령의 전날 사면 발언에 대해 "사면 가능성이 열려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이해하는 게 맞을 것 같다"고 전했다. 청와대는 현재 사면 행사 여부와 대상자를 확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후보군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면 대상자들에 대해 각계각층의 의견을 두루 듣고 있는 상황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26일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문 대통령의 전날 발언은)대통령 본인 생각이 있으시긴 하겠지만 그것만으로 결정하지 않겠다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내 판단만 믿지 않겠다는 말씀을 하신 것"이라며 "이제 (사면이)이슈화가 되면서 계속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면에 대한 의견을 듣고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 사면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국민 절반을 넘는다는 점에서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회동을 앞두고 이 전 대통령의 사면 여부가 불거지던 시기에 실시한 뉴스토마토·미디어토마토 정기 여론조사(3월19~20일) 결과를 보면, 전체 응답자의 53.2%가 이 전 대통령의 사면에 '반대' 의견을 냈다. '찬성' 응답은 38.2%에 그쳤다. 이 결과를 토대로 보면 문 대통령 발언대로 국민들의 지지나 공감대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이 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지난해 2월10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퇴원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문 대통령에게 이 전 대통령 사면을 공개적으로 촉구했던 윤 당선인 측은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배현진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사면은 현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당선인이 언급하고 평가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문재인정부 청와대 출신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사면이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이 전 대통령에 대한 국민 여론이 여전히 안 좋은 상황인 데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의 경우 강력한 원칙주의자인 문 대통령의 성정상 사면권을 행사하지 않을 것으로 봤다. 이재용 전 부회장 사면 여부 관련해서도 "하려고 했으면 진작에 했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한 민주당 의원은 "차기 정부에 부담을 덜어주는 일이라면 모르겠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면은 공감대가 많이 약해서 사실상 사면할 (대상이)없다"며 "대통령 스타일로 보면 그럴 분도 아니고, 또 타이밍도 이미 지났다. 지금 사면을 하는 것은 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은 "지방선거를 앞둔 당에도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다"며 "굳이 사면을 한다면 윤 당선인이 대통령에 취임한 후 하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