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효선 기자] 초등학생 딸의 친구를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기소된 남성이 항소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은 사건에서 대법원이 피해자가 직접 법정에 나와 진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파기환송했다. 지난해 12월 성폭력처벌법상 19세 미만 피해자 진술 영상물의 증거능력 특례조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의 부작용이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8일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위반(13세 미만 미성년자 위계 등 간음 및 추행)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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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청사 전경. 사진/뉴스토마토
재판부는 “위헌 결정의 효력은 결정 당시 법원에 계속 중이던 이 사건에도 미친다”며 “위헌 법률 조항은 영상물의 증거능력을 인정하는 근거가 될 수 없고, 속기록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근거도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공소사실이 청소년성보호법 26조 1항의 아동·청소년대상 성범죄에 해당하기 때문에 같은 조 6항에 따라 영상물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여지가 있다”면서도 “이 조항 중 위헌 법률 조항과 동일한 내용을 규정하고 있는 부분은 위헌 결정의 심판대상이 아니었더라도 과잉금지 원칙에 위반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원심은 청소년성보호법의 해당 조항이 위헌인지 여부 또는 그 적용에 따른 위헌적 결과를 피하기 위해 피해자를 증인으로 소환해 진술을 듣고 피고인에게 반대신문권을 행사할 기회를 부여할 필요가 있는지 여부 등에 관해 심리·판단했어야 한다”며 “그런데도 원심은 이 같은 심리에 이르지 않은 채 영상물과 속기록을 유죄의 증거로 삼아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1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했다”고 지적했다.
법원에 따르면 12세 B양은 엄마와 싸운 날 자주 놀러가던 친구 C양 방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A씨가 방으로 들어와 범행을 저질렀다. A씨는 C양의 의붓 아버지다.
1·2심 재판부는 “성폭력 범죄로 징역형의 처벌받은 전력이 2회 있음에도 또 범행을 저질렀다”며 A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다만 “A씨의 배우자와 자녀들이 선처를 탄원하고 있는 점은 유리한 정상”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23일 헌재가 옛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30조 6항을 ‘위헌’이라고 결정하기 전까지 성폭력 관련 재판에서 미성년 피해자는 직접 법정에 나와 증언을 하지 않아도 수사 단계에서 진술을 녹화한 영상을 제출하고 조사 동석자가 해당 사실을 확인한 내용을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세 미만 피해자 진술 영상물의 증거능력 특례조항에 대한 헌재의 ‘위헌’ 결정이 내려지면서 지난해 말부터 미성년 피해자는 직접 법정에 출석해야 한다. 법무부의 대안 마련으로 현재는 영상을 통한 증인신문도 가능하다.
헌재의 이 같은 결정은 A씨에 대한 2심 선고 이후 이뤄졌다. 헌재 결정 전 1·2심 재판부는 피해자에 대한 증인신문 대신 신뢰관계인 증인신문을 진행했다. 또 A씨가 부동의했으나 옛 성폭력처벌법 30조 6항에 근거해 피해자 진술과 조사과정을 촬영한 영상물과 속기록을 증거로 채택함으로써 공소사실을 전부 유죄로 인정했다.
박효선 기자 twinseve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