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홍연 기자] 국회에서 계류 중인 '망 사용료 의무화 법안(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한미 간 통상 문제로까지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내달 21~23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방한하면서 넷플릭스 한국지사를 방문하는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고 알려지면서 업계는 빅테크의 망 사용료 부과 움직임에 어떤 영향을 줄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10일 국회 및 관련 업계에 따르면 망 사용료법은 새 정부 출범 이후 첫 번째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 간 주요 안건으로 부상하고 있다. 현재 국회는 글로벌 콘텐츠제공사업자(CP)가 국내 인터넷서비스제공자(ISP)에게 망 사용료 지불을 강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6건이 계류 중이다. 최근 진행된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도 법안 의결이 보류돼 조만간 공청회를 열어 세부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망 사용료 문제는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SKB) 간 망 사용료 합의가 접점을 찾지 못하면서 본격적으로 가시화됐다. 우리나라 국회 입법 움직임에 주한 미국 대사 대리와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사실상 제동을 걸며 한국의 입법 선례를 경계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최근 발간한 '2022년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에서 "만일 이 법률이 제정되면 한국의 국제무역 의무에 대한 우려가 커질 것"이라고 했으며, 크리스토퍼 델 코소 주한 미국 대사 대리도 지난달 주한미국상공회의소가 주최한 한 세미나에서 "외국 기업에 그들의 혁신과 투자가 환영받지 못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망 사용료 의무화 법안이 한미 FTA에 위반되는지에 대해선 전문가들의 의견도 분분하다. 한미 FTA 조항 14.2조는 '국경을 건너 제공되는 모든 통신망, 서비스가 차별받아선 안 되며 망 접근·이용에 대해 어떠한 조건도 부과되지 않도록 보장하라'고 명시하고 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해당 법안은 국내 CP와 해외 CP 사이에 차별이 없는 데도 접속료를 내도록 강제해 해외 CP들의 국내 시장 접근을 저해하므로 FTA 위반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해외 CP들은 국내망 사업자로부터 인터넷 역무를 제공받지 않고 있기 때문에 자유로운 협상을 통해 접속료를 낼지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망사용료법에 차별적인 요소가 없어 FTA 위반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방효창 경실련 정보통신위원장(두원공대 교수)은 "이미 국내 CP들은 국내 통신사에 망 사용료를 내고 있어 역으로 넷플릭스, 구글 등 해외 CP 역시 동일한 조건에 해당하는 의무를 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문종철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FTA 위반으로 제소하려면 미국 기업이 한국 기업과 비교해서 차별적인 대우를 받아야만 성립이 되는데 현재로선 해당하는 부분이 없다"고 말했다.
한국은 사용자를 위한 첨단 인프라를 갖추고 있고, 새로운 정보기술(IT)이나 서비스를 받아들이는 데 거리낌이 없는 편이다. 이같은 배경 때문에 망 사용료 등 빅테크 규제에서도 상대적으로 앞서가는 입장에 놓이게 됐다. 여기에다 최근 유럽연합(EU)도 '반독점법'을 바탕으로 거대 플랫폼에 대해 견제하고 있어 한국의 규제 정책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구글, 넷플릭스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임원들은 한국을 앞다퉈 방문해 규제 움직임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국내 ISP업계는 빅테크에 대한 망사용료 부과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넷플릭스는 막대한 트래픽을 일으키는 초대형 CP인 만큼 무임승차보다는 적절한 이용 대가를 내는 것이 타당하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 마련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지옥’ 체험존. (사진=뉴시스)
홍연 기자 hongyeon1224@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