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외교무대에 등장했다. 20~22일 2박3일동안 한국을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 일정을 소화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21일 정상회담이 끝난 후 발표한 공동성명을 통해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를 통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약속했다“고 천명했다. 또 양국 국가안보실에 ‘경제안보 대화’를 출범시키기로 했다.
IPEF는 미국이 중국을 경제 포위하기 위해 세우는 경제블록의 성격이 짙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 때문에 문재인정부는 참여 여부를 두고 고심했다. 중국과의 경제무역 관계가 워낙 두텁기에 그 관계가 훼손될 가능성을 염려한 것이다. 한마디로 ‘제2의 사드’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외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단칼에 매듭지었다. 중국을 고려해서 ‘개방성’이나 ‘포용성’이라는 수식어가 들어가기는 했다. 대통령실에서는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 IPEF에 참여한다고 해서 중국을 배척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미국이 형성하는 블록에 더 다가선 것은 확실해 보인다. 윤석열정부의 이번 결정을 두고 결단이라면 결단이라고 할 수도 있다.
사실 지난 몇 년 사이 중국이 보여준 자세가 이번 결정을 유발하는데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2018년 사드 배치 이후 중국으로부터 온갖 압박과 보복에 시달려 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의 태도는 쌀쌀했다. 한국 기업들의 현지 영업은 어려워졌다. 이 때문에 삼성과 현대자동차의 판매는 곤두박질쳤다. 전기차나 배터리 등 신기술제품에 대한 중국의 장벽도 더 강고해졌다.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 게임 등 한류 작품들도 배척당했다. 이른바 한한령으로 일컬어지는 중국의 압박 조치로 한국 문화상품의 중국진출은 얼어붙었다. 최근 들어 일부 작품에 대한 허가가 찔끔찔끔 취해졌지만, 중국이 쳐놓은 장벽은 여전히 두텁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는 중국과의 우호적인 관계에 대한 회의론이 스멀스멀 번져갔다.
반면 미국의 경우 한국 기업이 뛸 수 있는 여지가 더 커지고 있다. 이미 LG나 SK 등 배터리 기업이 미국 자동차회사들과의 합작이 상당히 진전됐다. 한국 기업이 노력하기에 따라서는 미국의 전기차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가능성도 보인다. 과거 미국 석유회사들이 한국에 정유공장을 세웠듯이 말이다. 미국과 중국의 대립 관계로 계속되는 사이 중국의 전기차나 배터리가 미국 시장에 들어가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원자력에너지도 핵무기 개발에 열을 올리는 북한과 중국의 우호 관계가 지속되는 한 미국과 협력할 수밖에 없다.
요컨대 최근 몇 년 사이 중국이 한국을 사실상 미국 쪽으로 밀어낸 셈이다. 뒤늦게 중국은 여러 가지로 한국을 회유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이를테면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 왕치산 부주석을 보냈다. 그렇지만 중국 시장에 대한 한국기업과 국민의 기대가 상당히 약해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중국은 여전히 한국의 가장 큰 무역 상대국이다. 한국 수출의 4분의1 가량이 서해 바다를 건너간다. 반대로 전기차 배터리에 들어가는 일부 소재를 비롯해 적지 않은 부품 소재가 서해 건너편에서 들어온다. 따라서 중국과의 관계가 흔들릴 경우 요소수 사태 같은 공급망 위기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중국의 거대 시장이 더 멀어질 가능성도 우려된다. 게임업계 등 중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일부 업종에서는 ‘제2의 사드 사태’가 벌어질까 봐 벌써 전전긍긍하고 있다.
좀 더 쉽게 말해서 중국 시장을 다소 잃더라도 미국이나 동남아 등 다른 시장에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면 괜찮다. 중국과의 관계가 다소 악화돼도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계산서는 확실하게 나오지 않았다. 따라서 중국과의 관계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앞으로 관계가 더 나빠지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 나빠졌을 경우의 대책도 함께 강구돼야 한다.
과거 조선시대 광해군이 명나라와 청나라 사이에서 취했던 외교 노선이나 고려시대에 새로 일어난 금나라와 송나라 사이에 취했던 입장 등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어느 한쪽에 일방적으로 완전히 기울어지는 어리석음은 피해야 한다. 오히려 한쪽과의 관계를 십분 활용해 다른 쪽에서 최대의 실리를 취하는 슬기로운 대처가 요구된다.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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