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효선 기자] 집주인이 전세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하는 이른바 ‘깡통전세’의 위험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수많은 세입자들이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기에 놓여있다.
그간 ‘계약갱신청구권을 통한 4년 거주 가능 및 보증금 상한 5%’ 임대차 3법 등 세입자에게 불합리한 부동산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시도는 있었지만 정작 보증금을 떼인 세입자를 구제할 방안은 찾기가 어렵다.
‘깡통전세’ 피해 예방을 위한 법안들이 국회 계류 중이지만 상임위에 수개월~수년째 계류 중이다.
지난해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은 ‘나쁜 임대인’ 명단 공개를 골자로 하는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과 ‘주택도시기금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했다.
소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8월 말 기준 세입자 전세보증금을 2건 이상 돌려주지 않은 ‘나쁜 임대인’은 총 425명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257명) 대비 65.4% 늘어난 규모로, 이들이 미반환 한 전세보증금만 58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소 의원은 지난해 10월 국토위 국정감사에서 “나쁜 임대인 공개제도(Rogue Landlord Checker)’는 이미 영국에서 시행하고 있다”며 “(국내에선) 보증금을 떼먹는 사람이 2017년 전까지만 해도 극소수였는데 2018년 이후 급격하게 늘어나 2조 가까이 임대보증금을 떼먹고 있다. 하루빨리 이 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 '나쁜 임대인 이력 확인 시스템'. (출처=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김 의원실에 따르면 청년 세입자의 갭투기 피해가 가장 많은 곳은 △서울 강서구로 나타났다. 아파트가 많은 염창동과 달리 빌라가 많은 화곡동에서 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한 것이다. 이어 △서울 양천구 신월동 △경기 부천 △서울 금천구 △서울 구로구 등이 뒤를 이었다. 대부분 지역에서 30대 피해가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김 의원도 지난해 10월 국토위 국감에서 “전세보증보험조차 들지 못해 경매와 가압류 등의 불편과 고통을 겪는 청년이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며 “갭투기꾼 공개법 등을 마련, 계약 전 임대인의 위험도를 인지하고 피해를 방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월에는 임차인의 제3자에 대한 대항력 발생 시기가 주민등록을 갖춘 다음날 발생하는 제도적 허점을 악용한 임대사기를 근절하기 위한 법안(홍석준 국민의힘 의원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세입자의 전입신고 당일 주택 담보 대출을 시행하는 등 전세 보증금 반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행위를 선제적으로 예방하기 위한 방안이다.
하지만 여야 간 올 하반기 원 구성 협상 실패로 입법 공백상태가 계속 이어지며 세입자 보호를 위한 법제화는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법조인들은 세입자가 집 계약할 때 집주인이 최소한의 신용을 갖춘 사람인지 정도는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에서 ‘나쁜 임대인 명단 공개’ 필요성에 의견을 같이 했다. 최우석 변호사(법률사무소 제일법률)는 양육비 미지급자 신상을 공개하는 ‘배드파더스’ 사례를 언급하며 “개인정보를 과도하게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세입자가 집 계약 전 임대인의 세금 여부 등 신용 정보를 의무적으로 조회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악성 임대인 공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대부분의 법안들에 허점이 많고,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김예림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발의된 법안들이) 근원적으로 전세사기를 뿌리 뽑을 수 있는 제도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한 가지를 개정하면 또 다른 시스템들과 어긋나기 때문에 제도·시스템을 전반적으로 뜯어고쳐야 하는 등 또 다른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는 전세사기를 개인의 문제로 봤으나 피해 규모가 너무 커지는 만큼 이 문제를 공적인 영역에서 관리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제언했다.
(사진=뉴시스)
박효선 기자 twinseve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