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출범, 유럽연합(EU)의 공급망 실사 지침 발표 등을 통해 최근 통상과 노동 이슈를 연계하려는 추세가 점차 강화되는 것에 따라 우리 기업도 글로벌 공급망 차원에서 노동 관련 리스크를 점검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4일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5일 발표한 '노동 이슈의 통상 의제화 분석 및 시사점'이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월 미국 주도로 출범한 IPEF는△무역 △공급망 △청정에너지탈탄소인프라 △조세반부패 등 4개의 필러(pillar)로 구성되며, 이 중 무역 필러에서 노동 관련 내용이 주로 다뤄질 예정이다.
보고서는 공식선언문이 무역 필러에서만 노동을 언급하고 있지만, 공급망 내 강제노동 연루를 차단하는 위구르강제노동방지법 사례로 볼 때 공급망 등 다른 필러에서도 노동 이슈가 다뤄질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다자간 협상 형태로 진행되는 IPEF 특성과 참여국 간 노동권 보장 수준이 다른 상황에서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보다는 낮은 수준에서의 노동권 보호 조항이 포함될 것으로 내다봤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대체해 출범한 USMCA는 미국이 맺은 무역협정 중 가장 강력한 노동권 보호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신속대응 메커니즘'을 도입해 특정 사업장에서 노동권 침해가 인정되면 무관세 혜택을 중지하거나 벌금을 부과하는 등 협정상의 특혜를 중지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 6월 발표된 위구르강제노동방지법은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생산된 상품을 강제노동으로 생산됐다고 가정하고 해당 상품의 수입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이 지난 5월16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장-피에르 대변인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경제적 관여를 강화할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른바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를 거론했다. (사진=AP/뉴시스)
EU집행위원회는 2월 기업의 사업장과 공급망에서 인권과 환경이 침해되지 않았는지 보고하도록 하는 공급망 실사 지침을 발표했다. 실사 대상 기업은 인권에 대한 잠재적인 부정적 영향을 파악·평가하고, 이에 대해 조처를 해야 한다.
또 EU의회는 6월 강제노동 결부 상품의 수출입 금지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고, EU집행위원회는 오는 9월 해당 법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해당 법안은 미국의 위구르강제노동방지법과 달리 특정 국가를 대상으로 하지 않고 '강제노동'에 규제의 초점을 맞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우리나라가 체결한 18개 FTA 중 노동 조항이 도입된 것은 한·EU, 한·페루, 한·미, 한·튀르키예, 한·호주, 한·캐나다, 한·뉴질랜드, 한·콜롬비아, 한·중미, 한·영 등 10개다. 이 중 2018년 EU가 ILO 협약을 비준하지 않고 있다면서 문제를 제기하는 등 FTA상 첫 노동 관련 분쟁이 발생했지만, 전문가 패널이 EU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황준석 무역협회 통상지원센터 연구원은 "무역 협정이나 국내법을 통해 노동 이슈에 대한 통상 쟁점화가 더욱 강화되고 있다"며 "국내 노동 이슈, 노동 관련 국제 협약 미이행, FTA상 노동 규정의 미이행 등 국내법상 의무 위반뿐만 아니라 노동 관련 리스크가 있는 국가와 연계된 기업의 공급망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선진국을 중심으로 노동권 준수 의무 요구가 심화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법적 의무 이행 점검과 동시에 공급망 리스크 검토와 대응 방안 모색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국내 수출 기업의 절반 이상이 공급망 내 ESG 경영 미흡으로 원청기업으로부터 계약 또는 수주 파기 위기감을 느낀다는 조사 결과도 발표됐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수출 기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수출 기업의 공급망 ESG 실사 대응 현황과 과제' 조사를 보면 응답 기업의 52.2%가 향후 공급망 내 ESG 경영 수준 미흡으로 고객사(원청기업)로부터 계약·수주가 파기될 가능성이 높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기업은 공급망 ESG 실사와 관련한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내부 전문인력 부족'(48.1%)을 꼽았고, 그다음으로 '진단과 컨설팅·교육 비용 부담'(22.3%), '공급망 ESG 실사 정보 부족'(12.3%) 등으로 응답했다.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