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효선 기자] 노사합의로 임금피크제를 개선하면서 특별퇴직하는 근로자를 계약직 별정직원으로 다시 채용하기로 해놓고 기업이 이를 어겼다면 취업규칙상 근로조건 위반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취업규칙상 근로조건은 근로관계 존속을 전제로 하는 것이지만, 근로관계와 직접 관련있는 사항이라면 특별퇴직 후 근로자에게도 적용돼야 한다는 첫 대법원 판결이다.
대법원 1부(주심 대법관 노태악)와 3부(주심 대법관 이흥구)는 29일 A씨 등 퇴직자 83명이 하나은행을 상대로 제기한 고용의무이행 및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특별퇴직자들에 대한 재채용 행위 자체는 특별퇴직자와 피고 사이의 종전 근로관계가 종료된 후 이뤄지는 것이지만, 재채용 부분은 특별퇴직하는 근로자와 피고 사이에 존속하는 근로관계와 직접 관련되는 것으로서 특별퇴직하는 근로자의 대우에 관한 조건을 정한 것이기 때문에 취업규칙으로서 성질을 가진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노사합의 중 재채용 부분은 하나은행에게 원칙적으로 특별퇴직자를 재채용할 의무를 부과하는 취지이고, 퇴직자들과 하나은행 사이에 재채용 신청의 기회 부여만을 특별퇴직조건으로 변경하기로 하는 내용의 확정적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일부 특별퇴직 근로자들과 하나은행 사이에 재채용 신청의 기회만 부여해도 된다는 내용의 개별합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재채용 부분에 반해 퇴직자들에게 불리한 내용의 합의로, 근로기준법 97조에 따라 무효이고 따라서 피고에게는 원고들에 대한 재채용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이에 따라 하나은행은 특별퇴직행원들에게 중간수입 등을 공제하고 재채용 의무일(특별퇴직일 다음날부터 원고들이 만 58세가 되는 날까지)에 해당하는 임금과 퇴직금을 배상해야 한다.
다만 “‘특별퇴직의 합의만으로 계약직 별정직 고용계약이 성립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이 사건의 경우 기대권의 법리가 적용되는 사안과는 그 요건과 효과가 같다고 볼 수 없어 기대권의 법리를 적용할 수 없다”고 했다.
하나은행은 2015년 1월 외환은행과 합병하기 전 노사합의에 따라 임금피크제와 특별퇴직 중 하나를 선택하는 내용의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2009년 1월 노사는 근로자가 특별퇴직하는 경우 계약직 별정직원으로 만 58세까지 재채용하기로 합의했다.
1959년 하반기 출생자인 A씨 등은 2015년 하반기 56세가 되자 2015년 11월 말 특별퇴직했고, 1960년 상반기 출생자 B씨 등은 2016년 상반기 56세를 맞아 2016년 5월 특별퇴직했다. 하지만 하나은행은 이들을 별정직으로 특별채용하지 않았다.
이에 1959년 하반기 출생 행원들과 1960년 상반기 출생 행원들은 하나은행을 상대로 별정직 재채용 의무 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 등을 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1959년 하반기 출생 A씨 등 퇴직자들은 항소심 중 주위적 청구(별정직 고용계약이 이미 체결되었음을 전제로 한 임금 등 청구)와 제1예비적 청구(재채용 기대권을 이유로 한 임금 등 청구)를 추가했다.
A씨 등 사건의 1심은 노사합의한 재채용 내용이 취업규칙에 해당하지 않지만, 특별퇴직 근로자와 하나은행 사이 합의를 해석하면 하나은행이 이들을 재채용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채용 의무기간은 특별퇴직 다음날부터 만 58세가 될 때까지라고 제시하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단했다.
2심도 하나은행이 특별퇴직자들을 재채용할 의무가 있다고 보고, 재채용 의무기간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다.
B씨 등 사건의 1심은 노사합의 재채용 부분이 특별퇴직자들에게 재채용 기회를 부여하는 내용에 불과할 뿐, 직접적인 재채용 의무까지 부과하는 내용은 아니라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반면 이 사건 2심은 노사합의의 재채용 부분이 취업규칙에 해당하고, 재채용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이라고 봤다. 따라서 하나은행의 특별퇴직자 재채용 의무기간(특별퇴직 다음날부터 만 58세가 되는 날까지) 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인정했다.
대법원도 두 사건 2심 판단을 유지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 사건의 경우 재채용이 ‘퇴직’ 이후 ‘채용’에 관한 것이라는 점에서 근로조건의 해당 여부가 다툼이 됐는데, 이번 판결은 취업규칙에서 정한 복무규율과 근로조건은 근로관계의 존속을 전제로 하는 것이지만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의 근로관계 종료 후의 권리·의무에 관한 사항이라고 하더라도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에 존속하는 근로관계와 직접 관련되는 것으로서 근로자의 대우에 관하여 정한 사항이라면 이 역시 취업규칙에서 정한 근로조건에 해당한다고 최초로 설시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이번 사건과 같이 임금피크제도의 선택사항으로 특별퇴직을 시행하거나 인력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희망퇴직 등을 실시하면서 당사자의 자발적인 퇴직을 유도하기 위해 재채용의 조건을 부여하는 경우, 근로자로서는 재채용 조건이 근로조건에 해당함을 인식해 권리구제를 도모할 수 있고 사용자에게도 제도 시행과 관련한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 사건 쟁점 관련 다수의 하급심 사건이 계류 중에 있는데 이번 대법원 판결은 하급심에 기준을 제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법원 전경. 사진=뉴스토마토
박효선 기자 twinseve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