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효선 기자] 300여명 규모 사상자가 발생한 '이태원 참사'의 법적 책임 소재를 가리기 어려운 가운데, 경찰이 참사 당시 최초로 축제객을 밀어붙인 사람들에 대한 추적에 나서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경찰은 사건 발생 당시 “5~6명 무리가 밀기 시작해 사람들이 도미노로 쓰러졌다”, “토끼 머리띠를 한 남성이 ‘밀어, 밀어’라고 외쳤다” 등 목격담을 토대로 현장 CCTV 영상을 정밀 분석하는 등 원인 조사에 들어갔다.
일각에선 일명 '토끼머리띠남'으로 불리우는 이들 무리의 행위가 대열을 한꺼번에 무너뜨려 피해를 키웠다는 것이 확인될 경우 과실치사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핼러윈 압사 참사 현장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경찰 등 수사관들이 현장감식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사진)
하지만 실제로 이들에 대한 형사처벌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최우석 변호사(법률사무소 제일법률)는 “인과관계를 따져봐야겠지만 대열을 밀었다고 해서 그들이 그 많은 사람들의 상해, 사망까지 예견해 고의로 그런 행동을 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과실은 있어 보이나 형법상 그 과실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의 상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책임을 인정받기는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위원도 “CCTV 등을 통해 그들이 정말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어도 괜찮다는 고의, 이른바 ‘미필적 고의’가 있었는지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면서 “그 골목에서 많은 사람들이 상해·사망하리라는 것까지 예견해 상황을 회피·방지하지 않은 정황이 발견된다면 과실책임의 성립 여부를 따질 수 있겠으나, 일단 지금은 수사기관의 원인 분석을 통한 객관적 사실이 밝혀지고 난 뒤 행위 당사자에 대한 책임 여부를 따져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 참사를 중대시민재해로 보고 서울시장·용산구청장 등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중대재해처벌법상 공중이용시설 등에서 ‘중대시민재해’가 발생해 1명 이상 사망하는 경우 해당 지자체장 등은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그러나 법조계는 지자체장 등에게도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해 형사처벌을 묻는 것 역시 어렵다고 본다. 참사가 발생한 골목은 공중이용시설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중대재해 전문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중대시민재해가 적용되려면 기본적으로 공중이용시설 요건에 해당돼야 하는데, 참사가 발생한 장소가 골목이라서 적용이 어렵고, 시설에 대한 관리상 하자로 발생한 것도 아니라서 이를 중대재해처벌법상 의율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이태원 핼러윈'은 행사의 주체가 없었다는 점에서 애초에 재난으로 정의할 수 없다는 시각에 무게가 실린다. 그런데 정부가 서울 용산구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특별재난지역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에 따라 자연 또는 사회재난 발생으로 국가의 안녕 및 사회질서의 유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거나 피해를 효과적으로 수습하기 위해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 선포된다. 재난안전법상 ‘사회재난’은 화재·붕괴·폭발·교통사고(항공사고 및 해상사고 포함)·화생방사고·환경오염사고 등을 말한다.
전날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 용산구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이에 따라 이태원 참사 사망자 유족은 위로금 2000만원과 장례비 최대 1500만원, 이송 비용 등을 받게 된다. 부상자는 정도에 따라 500만원~1000만원을 받는다. 이와 함께 부상자와 유족은 구호금을 비롯해 세금, 통신 요금 등을 감면받거나 납부 유예된다. 중상자는 전담 공무원을 통해 1대1 집중 관리를 받는다.
김경호 변호사(법률사무소 '호인')는 “이번 참사를 재난안전법상 재난이라고 한다면 책임 부분이 불분명하다는 문제가 발생한다”며 “이번 참사의 본질은 사고인데도 정부는 (용산구를) ‘특별재난’으로 선포하면서도 책임문제에 있어선 주최 측이 없다고 이중적으로 말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기본적으로 특별재난지역은 ‘사회재난’에 해당돼야 선포할 수 있는 데도 정부가 요건에 해당되지 않는 사고를 ‘재난’으로 해석했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이태원 핼러윈은 주최 측이 없고 특정 공무원이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인데 이를 ‘특별재난지역’이라고 선포하는 것은 법률 규정 적용에 문제가 된다”고 진단했다.
반면 사상자만 무려 303명인 이번 참사에 대해 ‘특별재난지역’의 요건을 넓혀 해석할 수 있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승재현 연구위원은 “이번 참사를 법실증주의적 시각으로 들여다볼 게 아니라 당위적인 문제로 볼 필요성이 있다”며 “어떤 사람을 처벌하는 것에 대해서는 다소 엄격하게 판단해야 하지만, 이번 참사와 같은 참혹한 일이 일어나는 경우 국민을 위한 행정을 펼치는 국가 입장에선 죄형법정주의가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지원이 절실한 상황인 만큼 요건을 좀 더 넓게 광범위하게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책임소재가 없다고 재난지원을 할 수 없다는 해석은 너무 협소한 시각이라는 부연이다.
이어 “범죄 행위자를 처벌하는 시선과 피해자를 지원하는 시선은 완전히 다른 해석이 필요하다”며 “보다 폭넓은 해석을 통해 지원할 수 있는 모든 부분을 지원하는 게 국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라 보여지고, 이는 법 이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박효선 기자 twinseve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