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지은 기자] 국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1위 넷플릭스가 광고 요금제를 내놓으며 가격경쟁에 뛰어들었다. 수년 동안 플랫폼에 광고를 싣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주장해왔던 넷플릭스가 결국 출혈경쟁 전선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셈이다. 평균적으로 한 시간에 4~5분 정도 광고가 붙는다. 광고 감상을 위해 콘텐츠 빨리 감기 기능도 뺐다. 가격은 월 5500원이다. 기존 베이식요금제 대비 4000원 저렴하고, 국내 OTT 월정액 가운데 최저가 수준이다.
공룡 OTT의 정책 선회에 국내 OTT업계는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원래도 넷플릭스보다는 가격이 저렴했던 까닭에 더 이상의 출혈엔 신중한 모습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OTT 이용자들은 요금 저항력이 커 한번 낮춘 요금을 올리기는 쉽지 않다"며 "콘텐츠 수급이나 투자로도 지출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당장 낮은 요금제를 내놓고 경쟁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토로했다.
국내 OTT업체들은 저가 요금제로 대응하는 대신 가격 프로모션을 강화하며 가입자를 지키고, 타사 이탈 가입자를 흡수하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특히
KT(030200) 시즌과 12월1일 출범법인을 내놓는
CJ ENM(035760) 티빙이 적극 나서고 있다. 이달 30일까지 연간이용권을 41% 할인하고 있는데, 시즌 고객에게는 티빙의 베이직 요금제(월 7900원)보다 낮은 티빙 라이트(월 6600원)를 이용할 수 있는 권한을 제공하는 것도 고려 중이다. 쿠팡플레이는 월 4900원 요금제와 더불어 단건 구매를 경쟁사 대비 최대 30% 할인하는 정책은 시행하고 있다. 웨이브도 연말 자체 할인 프로모션을 고안 중이다. 해외 업체인 디즈니플러스의 경우 연간회원권을 최대 16% 할인해 판매하고 있다.
업계에선 이미 그간 콘텐츠 수급을 두고 출혈경쟁이 계속돼 왔다. 코로나를 기점으로 OTT 시장이 급격히 커지면서 후발주자들은 1위 넷플릭스에 필적할 만한 콘텐츠 대작을 만들고자 앞다퉈 큰 비용을 투입했다. 또한 오리지널 콘텐츠 확보 명목으로 해외 콘텐츠 수요 또한 커지면서 콘텐츠 수급 가격도 부쩍 올랐다. 결국은 원재료 격인 콘텐츠 수급 비용이나 제작 비용이 지속적으로 오르면서 지난해 티빙과 웨이브 등 국내 대표 OTT들은 매출 확대에도 불구하고 각각 762억원, 55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올해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리모컨 위 넷플릭스 로고. (사진=뉴시스)
하지만 OTT 시장은 한쪽의 이득과 다른 쪽의 손실의 합계가 0이 되는 제로섬 게임이 될 수 없다. 한 이용자가 여러 서비스를 동시에 쓰기도 하는 이 시장은 소비자 주머니 사정에 따라 다달이 매출이 달라지는 구조에 가깝다. 또한 콘텐츠라는 키워드 아래 각 사간 유기적으로 연계돼 있는 시장이기도 하다. 즉, 콘텐츠 시장으로 인재와 자본이 몰리며 양질의 콘텐츠가 나오면 같이 흥할 수 있지만, 위축될 경우 전체 시장으로 타격이 번지는 식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대부분의 OTT가 흥했던 것이 그 대표적 증거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상반기를 기점으로 분위기가 급변한 상황이다. 국제금리가 오르고, 거시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넷플릭스는 1분기와 2분기 연달아 가입자 감소를 기록했다. 넷플릭스의 성장 둔화는 국내 OTT 시장에 대한 회의감으로 이어졌다. 특히 체구가 작은 스타트업 왓챠는 투자금이 막히면서 난항을 겪었다. 올해 기업공개(IPO)에 나설 예정이었지만, 재무적투자자(FI)들이 IPO가 아닌 지분 매각을 검토하면서 경영권 매각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긴급 자금 조달에 나서고 있지만, 현재 기업가치는 코로나 당시 수준에는 훨씬 못 미친다. 다른 국내 OTT사들과 달리 왓챠의 경우엔 2019년 49.5%, 2020년 40.6%, 지난해 35%로 손실율을 줄이며 내실도 챙겨왔지만, 전반적인 경제상황 위축 속 사업 확장에 제동이 걸리고 만 상황이다.
OTT 시장의 특성을 무시한 채 제로섬 경쟁만 지속한다면 제2의 왓챠 사태는 또 일어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현재로선 왓챠 대비 상대적으로 큰 자본이 투입되고 있다하더라도 해외 공룡 OTT에 비하면 여전히 턱없이 작은 수준이기도 하다. 이에 OTT 시장이 각자 고유의 영역을 지켜가며 시장을 더욱 키워나가는 플러스섬 선순환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 이용자가 여러 서비스를 동시에 이용하고 싶게끔 질적 서비스 경쟁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OTT업계 관계자는 "코로나 특수가 끝나면서 OTT 간 제로섬 게임이 임박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면서 "출혈경쟁이 아닌 창의적인 콘텐츠를 앞세운 한국형 OTT가 글로벌 시장을 주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지은 기자 jieune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