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새 정부가 추진하는 법인세 인하에 대해 관련 법률 개정안이 계류 중인 가운데 경제계가 조속한 법안 통과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시민사회에서는 법인세 인하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오히려 증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견해가 맞서고 있다.
9일 재계에 따르면 현재 국회에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인하하는 내용의 법인세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6단체는 이와 관련해 지난 7일 국회에 법인세법 개정안을 조속히 통과해 달라고 촉구하는 경제계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경기 침체 대응 위해 현금 흐름 개선해야"
이들 단체는 성명에서 "그간 우리 기업이 높은 법인세란 모래주머니를 달고 뛰었고, 내년부터 경기 침체가 본격화할 것이란 안팎의 경고 목소리를 감안해 지금이 법인세를 인하해야 하는 적기"라며 "법인세 인하 효과는 법 시행 후 최초로 법인세를 중간예납하는 내년 하반기부터 나타나므로 내년 경기 침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올해 법안이 통과돼야 한다"고 밝혔다.
법인세 인하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경영난 해소 △투자·고용 증가 △외국인 투자 유치의 마중물 △사회 전반적 혜택 △대·중소기업 균형 감세 등 5가지 이유를 들었다.
이에 대해 "현재 금리 인상과 물가 상승으로 소비가 빠르게 위축되고 있고, 고환율과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기업 수익성도 악화하는 추세"라며 "경기 침체 장기화 위협에 대응할 수 있도록 현금 흐름을 개선해 부담을 줄여주는 법인세제 개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 "법인세 인하는 결국 투자와 고용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2016년 KDI 보고서에 따르면 법인세 평균 실효세율이 1% 인하되면 투자율은 0.2%포인트 증가하고, OECD에 의하면 법인세를 인하한 전후 2년간 평균 총고정자본형성 증가율이 미국의 경우 3.0%에서 3.7%로, 프랑스의 경우 0.5%에서 3.7%로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인하된 법인세는 치열한 글로벌 경쟁 상황에서 외국인 투자 유치의 마중물 역할을 한다"며 "지난 5년간 OECD 국가들은 점진적으로 법인세를 인하한 반면 우리는 오히려 인상했고, 이에 제조업 외국인 투자가 최근 3년간 약 50% 감소했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이번 법인세 법안은 중소·중견기업 특례를 신설해 감세 혜택은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서 더 크게 나타날 것"이라며 "실제로 기획재정부에 의하면 신설 특례는 중소·중견기업에 대해 과세표준 5억원까지 10% 특별세율을 적용하고 있어 조세경감률은 중소기업이 13%로 대기업 10%보다 높다"고 덧붙였다.
지난 7일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실에서 재벌부자감세 저지와 민생·복지 예산 확충 위한 긴급행동이 주최하는 '법인세 인하, 경제위기 헤쳐나갈 주춧돌 될 수 있을까'란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참여연대)
"인하 따른 세제 혜택 상위 소득자에 집중"
시민사회와 노동계에서는 경제계가 주장하는 법인세 인하로 인한 투자가 미미하고, 효과가 상위에 집중될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7일 재벌부자감세 저지와 민생·복지 예산 확충 위한 긴급행동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발제를 통해 "거시지표를 볼 때 법인세 실효세율과 투자·고용 간에는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반면 법인세 실효세율이 1%포인트 감소하면 사내유보율은 0.017%포인트 증가하는 것이 확인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법인세 실효세율이 하락하면 보통주와 우선주의 평균 시가총액은 증가하지만, 2019년 개인주주의 0.4%가 57.8%의 주식을 보유하는 등 주식 시장이 불평등한 상태에서 법인세율 인하에 따른 세제 혜택은 상위소득자에 집중된다"며 "또 법인세 실효세율이 1%포인트 하락하면 노동소득분배율은 0.0056%포인트 증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이어 "법인세 최고세율이 적용되는 과표구간을 낮추고 단순화하는 방향으로 세율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며 "기본적으로 세율 체계를 2단계~3단계로 단순화하면서 최고세율을 25%로 유지하되 적용 과표구간을 하향 조정할 것을 제안한다"는 의견을 냈다.
이정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정책실장은 토론에서 "미국은 지난 8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Inflation Reduction Act)으로 대기업 증세를 통해 재원 마련을 추진 중이고, 영국에서는 트러스 총리가 감세를 추진했다가 반대에 부딪혀 사임했다"면서 증세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윤석열정부의 감세 정책은 결국 복지 등 사회안전망에 필요한 예산 삭감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유동희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정책차장은 "추가적인 법인세 인하는 투자에 대한 긍정적인 효과는 없으면서 최근의 코로나 위기, 에너지 가격 상승에도 이익을 누리고 있는 기업에까지 혜택을 준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며 "단기적으로 중상위 소득의 개인과 법인에 대해 소득세와 법인세의 한시적인 증세를 진행하는 '사회연대세'를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앞서 기획재정부는 지난 7월21일 기업의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등을 지원하기 위해 법인세 최고세율을 인하하고, 과세 표준 구간을 단순화하는 내용의 세제개편안을 발표했다. 이후 정부는 9월1일 법인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해당 개정안은 법인세 과세표준 구간을 '200억원 이하'와 '200억원 초과'로 단순화하고, 200억원 이하 구간은 20%의 세율을, 200억원 초과 구간은 22%의 세율을 적용하도록 하되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의 과세표준 5억원 이하의 금액에 대해서는 10%의 세율을 적용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