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전세가가 매매가보다 높은 이른바 ‘깡통 전세(무갭투자)’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신종 수법의 등장으로 취약계층이 희생양이 되고 있다.
25일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에 따르면 올해 들어 취약계층 ‘바지 임대인’ 관련해서 전세 사기 상담이 이뤄진 사례만 30건에 달한다.
관련 상담은 예년 1~2건에 불과했지만, 올해 15배가 넘게 증가한 셈이다. 상담내용도 거의 대동소이해 전세 사기 관련 신종 수법으로도 꼽히고 있다.
악성 브로커들이 주로 신축 빌라 매도인과 결탁해 바지 임대인과 매매계약을 한 후 전세 보증금을 챙겨 자신들은 빠져 나가곤 한다.
최근 당국의 전세 사기 수사·제도가 강화되고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어 무갭투자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자 이들은 보다 쉽게 바지 임대인을 구하기 위해 취약계층을 표적 삼았다.
치매를 앓고 있는 70세 A씨가 이런 경우다. A씨는 국민기초생활수급비로 생계를 유지하다가 나라에서 수급자에게 집도 주고 용돈도 준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한 부동산 컨설팅 업체의 사무실에 방문했다.
A씨는 업체 실장의 지시대로 인감증명서 등을 준비해 날인했고, 지원금 50만원도 받았다. 그리고 얼마 후 자치구로부터 부동산 취득이 확인됐다며 '수급 보장 중지' 결정을 받았다.
A씨가 사인한 주택은 국가에서 무상으로 주는 주택이 아니라 이미 전세 임차인들이 사는 주택이었으며, 전세기한 만료 시 임대인인 A씨가 이를 채무로 떠안아야 한다.
40대인 B씨는 폐암 투병 중인 어머니, 누나, 누나의 자녀와 함께 서울에 있는 공공임대아파트에 거주 중이다. 브로커는 B씨에게 대출을 해주겠다고 접근해 70만원을 줬고, 대출 서류라고 속여 서명을 받았다.
그러나 B씨가 서명한 서류는 2억4000만원짜리 전세보증금이 걸린 서울의 한 빌라 매매 계약서였고 졸지에 빌라 주인이 된 B씨가 전세보증금 채무를 떠안았다. 결국 B씨네 네 가족은 살고 있던 공공임대주택에서 주택 소유를 이유로 퇴거 명령을 받았다.
브로커들이 장애인·수급자 등 취약계층을 노리는 이유는 이들이 금융지식이 해박하지 않은데다 기존 금융권에서 대출이 어렵고 당장 수입이 절박하기 때문이다. 100만원도 안 되는 금품 보상에 혹해 꾐에 쉽게 넘어가기도 한다.
“정부에서 주는 무상주택”, “돈 안 들이고 집에 투자할 수 있다” 등의 달콤한 대화도 브로커들이 취약계층을 유인할 때 주로 하는 말들이다.
브로커들은 계약 과정에서 지급 확인서 또는 일반 대출 계약서로 속이거나 아예 매매계약서 상단을 가리는 등 교묘하게 주택 매매 사실을 감추기도 한다.
그 결과, 이들에게는 보증금 수억원의 채무와 함께 수급권 및 임대주택 거주 자격 박탈이 돌아와 당장의 생계조차 위협받고 있다.
취득했다는 주택 역시 전세금이 이미 매매가를 웃도는 상황에서 경매도 쉽지 않다. 일부 브로커들은 주택 처분을 조건으로 1000만원이 훌쩍 넘는 금액을 도리어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브로커로부터 사기당했음을 입증하기 쉽지 않아 매매계약 체결에 대한 계약 무효·취소 소송을 하더라도 승소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정부나 지자체는 고의로 수수료를 받는 악질 바지 임대인과 피해자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뒷짐만 진 채 주택 소유 기준 위반을 문제삼아 복지 혜택을 박탈하고 있다.
전가영 서울시복지재단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변호사는 “취약계층이 바지 임대인이 돼 결국 복지 혜택이 박탈되는 구조로 우선 복지 혜택이 박탈되지 않도록 조치가 필요하다”며 “임대인 변경 시 임차인에게 의무 고지를 하고 보이스피싱처럼 브로커들에 대한 처벌과 수사를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 한 공인중개사무소에 적혀있는 전세 물건 알림 문구. (사진=뉴시스)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