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잔치'는 일생에 단 한 번밖에 하지 않는다. 예로부터 아기가 태어나서 백일이 되면 새옷을 입히고 '백일상'을 차려 친지들과 함께 100살까지 무병장수하기를 기원하는 성대한 잔치를 열었다. 영아(?兒)라는 나약한 존재에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 인정받는 의식이 백일잔치였다. 요즘은 번거롭다는 이유 등으로 백일잔치는 생략하고 '돌잔치'로 대체하는 분위기로 바뀐 지 오래라서 백일잔치를 보는 일이 쉽지 않다. 그래도 각 가정에서 성대한 백일잔치는 열지 않더라도 조촐하게 백일상을 차려서 축하하는 풍습은 사라지지 않았다.
여당 대선주자였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대선 패배 후 예상을 깨고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에 이어 전당대회에 도전해서 77.77%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 대표에 선출된 것이 지난 8월 28일이었다. 그로부터 100일째인 지난 5일, 이 대표는 백일잔치나 백일 기념 기자회견을 열어 축하를 받고 야당 대표로서의 목소리를 높이는 행보에 나서는 대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침묵을 선택했다.
점점 조여 오는 대장동을 비롯한 각종 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를 의식한 이 대표는 야당 대표 100일의 성과와 미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백일잔치'를 열지 않은 것이다. 성남시장 시절부터 자신의 곁에 둔 정진상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과 김남준 정무조정부실장,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등 최측근 인사들이 잇따라 구속됐음에도 유감 표명조차도 하지 않았다. 밖에서는 대장동 재판 증인으로 나선 남욱 변호사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등이 연일 대장동 의혹의 최종 책임자는 이 대표라면서 날을 세우고 있다.
이 대표로서는 대선 과정에서 불거진 대장동과 백현동 의혹 및 성남FC 후원금 의혹, 배우자 김혜경씨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 등에 대한 수사를 국회의원과 당 대표라는 두 겹의 방패로 방어하고 있는 형국이지만 검찰 소환 등 사법리스크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돈 한 푼 받은 적이 없다거나 나와는 관계없다는 해명만으로 넘어갈 수 없는 절체절명의 정치적 위기에 봉착한 셈이다.
"야당 파괴에만 몰두 중인 윤석열 정부 200일 동안 정치는 실종됐고, 대화와 타협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무능, 무책임, 무대책으로 민생 경제 파탄, 국민 안전 위협, 민주주의 퇴행, 한반도 평화 위기를 자초했습니다. 정부·여당에 경고합니다. 국민과 역사를 두려워하십시오.”
지난 5일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대표는 각종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를 야당 파괴이자 야당 탄압으로 규정했다. 그리고는 SNS를 통해 "민주당은 지난 100일처럼 앞으로도 실용적 민생 개혁, 더 굳건한 민주주의를 향해서 거침없이 나아가겠습니다. 민주당의 길, 이재명다운 길’을 가겠습니다"라며 정면 돌파를 선언했다.
야당 대표 등에 대한 검찰 수사를 야당 입장에서는 야당 탄압이라고 주장할 수는 있다. 그러나 최측근이라는 정진상이 5·6급 별정직 '어공'임에도 불구하고 '정책실장'이라는 직책을 부여해서 성남시와 경기도의 모든 정책을 사전 검토하고 결재해왔다면 이 대표가 모른 체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대표의 권한 위임과 묵인없이는 불가능하다.
이 대표가 결연한 어조로 밝히고 나선 민주당의 길과 이재명다운 길은 과연 무엇일까?
최측근 인사가 법원에 의해 구속영장이 발부됐음에도 이 대표는 그들을 믿는다고 했다. 검찰의 수사가 무리한 야당 탄압이라는 이 대표의 주장은 법원이 이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하지 않았더라면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법원은 범죄 혐의가 충분히 소명되고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는 검찰의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표는 국회의원 한 번 하지 않고 대선 후보의 자리에까지 오른 '자수성가' 정치인이다. 그래서 당의 주류에 속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성남시장에 당선된 후 대선 후보로 선출되기까지 당의 주류 세력과 때로는 투쟁해 온 비주류로서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이재명다운 길은 흙수저에서 금수저가 될 수도 있었던 당당함을 잃지 않는 것이기도 하고 그동안 그를 둘러싸고 제기돼 온 온갖 구설수를 돌파해 온 저력에 있기도 할 것이다.
검찰이 제기하는 각종 의혹에 대한 이 대표의 책임론에 당당하다면 당 대표라는 방패를 벗어던지고 적극적인 해명에 나서는 것이야말로 이재명다운 길이 아닐까?
검찰이 무리한 야당 탄압 수사를 해서 야당 대표를 음해하려 한다면 국민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이 대표 자신이 오랜 경력을 가진 변호사가 아니던가. 검찰 수사에 정면으로 대응한 후 대표에 복귀 하던가 이재명의 정치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 어떨까. 자신에게 제기된 성매매 의혹을 부인하다가 결국 당내 우군마저도 등을 돌리게 만든 이준석 전 국민의 힘 대표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도 좋겠다.
논란을 빚은 바 있는 민주당 당헌 제80조 1항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부정부패와 관련한 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각급 당직자의 직무는 기소와 동시에 정지된다. 이 대표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다만 개정된 당헌에 따라 이 대표가 주장하듯이 '정치 탄압' 등의 이유가 인정된다면 당무위 의결을 거쳐 당내 제재가 달라질 수 있지만 '사법 처리'는 달라지지 않는다.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