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신당동 스토킹 살인사건'이 발생한 지 석달째를 맞은 가운데 서울에 전국 최초로 스토킹 피해자를 위한 전용 보호시설이 생겼다.
서울시는 주거침입 같은 위협으로부터 스토킹 피해자의 안전을 지키는 전용 보호시설 3곳을 15일부터 운영한다고 14일 밝혔다.
서울시는 기존 가정폭령 보호시설을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리모델링을 진행했다. 입소를 희망하는 스토킹 피해자는 ‘여성긴급전화 서울센터’에 24시간 연락하면 시설로 연계된다.
3곳 중 1곳은 가정폭령·성폭력·스토킹 남성 피해자 보호시설로 운영된다. 기존엔 남성 피해자는 별다른 보호시설이 없어 노숙인 보호시설로 연계되곤 했다. 남성 피해자는 ‘남성의 전화 가정폭력상담소’를 통해 상담 후 입소할 수 있다.
보호시설은 CCTV, 112 비상벨, 안심이 비상벨, 안전도어락, 스마트초인종, 안심이앱 같은 안전장비를 갖춘 공간에서 안심하고 머물면서 출·퇴근, 외출 같은 일상생활도 지속할 수 있다.
심리적 안정을 위해 실내 인테리어도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로 조성했으며, 전문상담사가 직접 방문해 진행하는 사고후유장애(트라우마) 같은 심리 치료도 병행해 일상회복을 돕는다.
스토킹 피해자가 안심할 수 있도록 서울경찰청과 협업체계를 구축해 시설 범죄예방진단을 거쳐 안전장비를 설치했으며, 집중 순찰구역을 운영해 시설 주변 경찰 순찰을 강화했다.
외출 시에도 안심이 앱으로 관제센터에서 실시간 귀가 모니터링을 받으며, 외출 전에 스마트 초인종과 가정용 CCTV를 활용해 가해자의 주변 배회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위치추적 등을 이유로 휴대전화 사용이 제한되는 다른 보호시설과 달리 별도 휴대전화를 제공해 위치추적 걱정없이 출·퇴근 등 기존의 일상생활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서울시는 스토킹 피해자 특성에 맞는 시설 운영을 위해 전문가들과 스토킹 피해자에 특화된 운영 매뉴얼을 제작하고 사전에 변호사의 법률자문 검토도 완료했다.
운영 매뉴얼에는 입소 시 지켜야 할 행동지침, 위급 상황별 대처방법, 시설 주변 모니터링 방안, 외출 시 대응요령, 사전 정기 모의훈련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전용 보호시설을 찾은 A(23·여)씨는 전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하루에 100통 넘는 전화와 메시지에 시달리고 있다. 전 남자친구는 수 차례 집 앞으로 찾아와서 자신을 만나주지 않으면 집에 들어가겠다고 협박도 했다.
A씨는 “경찰에 신고는 했지만 전 남자친구에 대한 조치가 이뤄질 때까지 안전하게 머무를 곳이 절실했다”며 “A씨의 집을 아는 전 남자친구를 피해서 집을 나와 친구 집과 모텔을 전전해 왔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6월 서울시와 나무여성인권상담소가 19~49세 서울시민 2013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한 결과, 5명 중 1명은 스토킹 피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오프라인 스토킹 피해 경험은 21.1%(425명), 온라인 스토킹 피해 경험은 23.2%(468명)이었다.
스토킹 피해를 경험한 장소로 ‘집’(27.3%)이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피해 유형은 ‘하지 말라고 표현했음에도 계속 따라다니거나 연락을 받았다’(16.8%), ‘집·직장 근처에서 기다리거나 쳐다본 적이 있다’(11.8%) 순이었다.
스토킹 피해자들은 오프라인 스토킹 피해 경험을 통해 ‘계속 피해 경험이 생각남(15.9%)’, ‘불안 또는 우울(13.8%)’, ‘죽고 싶다는 생각(3.6%)’이 든다고 응답했다.
경찰에 신고하거나 지원기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이유는 대응방법을 몰라서(20.7%),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 같아서(18.5%), 보복이 두려워서(16.3%) 순이었다.
피해 경험 후 가장 필요했던 도움으로는 주변의 위로와 지지(21.9%), 더 큰 피해를 입지 않도록 보호 및 지원(19.1%), 경찰의 신속하고 적극적인 조치, 대응(18.4%) 순이었다.
서울시는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피해자가 전화 한통이면 법률·심리·의료·동행 지원 서비스를 맞춤형으로 지원받을 수 있는 ‘스토킹 피해자 원스톱 지원사업’을 내년부터 추진한다.
출·퇴근길이 불안한 스토킹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전문 경호인력을 활용한 ‘동행 서비스’도 내년부터 도입한다. 경호 범위와 동행 인원도 점차 확대할 계획이다.
김선순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장은 “최근 스토킹으로 인한 강력범죄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어 시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는 실정”이라며 “스토킹 피해자 보호시설을 통해 시민의 안전을 도모하고, 예방부터 지원까지 통합적인 지원체계를 마련해 피해자의 일상 회복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9월20일 서울 중구 신당역 2호선 화장실 앞에 마련된 ‘신당역 스토킹 살해 사건’ 희생자 추모 장소에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