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달리기로 ‘평화’를 외치며 온 세상을 누비며 다니게 된 시발점이 구제관 기자였다. 당시 뉴욕 한국일보 기자였는데 갑자기 본국으로 들어오라는 인사 통보를 받은 뒤 연락이 끊겼다. 나는 늘 구 기자의 소식이 궁금했다. 그러다 캄보디아 단톡방에서 내 소식을 듣고 연락이 왔다. 13년만이었다.
골프와 테니스가 나의 오랜 취미였다가 오십 즈음에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서 겨울에는 매주 주말 스노우보드를 타러 다녔고, 봄이면 페러글리이딩을 배웠고 여름에는 웨이크보드와 윈드서핑을 배웠다. 승마도 배웠었다. 오십 즈음에 만능스포츠맨이 되었다가 또 마라톤을 뛰기 시작했다. 마라톤을 뛰기 시작하자 다른 것들은 다 시들해지고 말았다. 나는 끝없이 달리는 것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 무렵 같이 패러글라이딩을 하던 한국일보의 구제관 기자가 운동을 좋아하시고, 테니스도 치시고 하시니 마라톤도 같이 하자고 말하곤 했었다. 나는 그 때마다 운동은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재미도 없는 달리기를 뭐 하려 하냐면서 거절하곤 했었다. 건강을 위해서 하는 운동이라면 테니스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가 자꾸 딱 한번만 같이 하자고 간곡하게 이야기를 하여 20년이나 젊은 친구와의 우정을 위해서 ‘딱 한번’이라는 전제 조건으로 맨하탄의 센트럴 파크로 뛰러 나갔다.
일요일 아침 센트럴 파크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 달리는 사람들 연인끼리 쌍쌍이 손을 잡고 걷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쳤다. 공원을 외곽으로 한 바퀴 도는 길은 6마일(10km)이었다. 구제관과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열심히 달리는데 사람들이 쌩쌩 앞으로 지나간다. 여자들도 앞으로 지나가고 할머니 할아버지조차 앞으로 지나간다. 운동을 전혀 안하고 산 것도 아닌데 달리기로 여자들에게 지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는 대책 없는 경쟁심이 발동하여 지나가는 여자를 따라붙으려고 막 달려가 보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숨만 헉헉 거리며 뒤쳐지고 말았다. ‘저 사람들은 거의 매일 달리는 사람들이에요. 강 선생님도 세 달만 연습하면 저 정도는 금방 따라잡을 수 있어요.’ 구기자가 말했다. ‘야! 딱 한번만 하자고 하더니 세 달 을 연습해?’ 나는 세 달이 아니라 그 후 계속 달리기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그렇게 달리기 시작한 것이 나의 인생의 물줄기를 확 바꾸어버렸다. 달리면 우뇌가 열리고 감각이 열린다고 한다. 이건 달리기의 아주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현대 산업사회의 근간인 논리적인 생각 위주의 좌뇌에 의지한 삶을 살도록 교육 받아왔다. 사람의 생각이나 논리는 얼마나 협소하기 짝이 없는 것인가?. 우뇌가 발달하면 감수성이 예민해지고 창조적인 감각이 열린다. 그것이 나의 삶을 바꿔버린 원동력이었다.
그가 지난 월요일 대사관 환영행사에 나타났다. 그리고 오늘 주말을 맞아 캄보디아의 캄풍 톰, 캄풍 스베이 구간을 같이 달려주러 왔다. 나에게 마라톤의 기쁨과 고통을 알려주고 사라졌던 그가 내 한혈마를 밀어주어 오늘은 훨씬 수월했다. 오래된 추억을 이야기하며 달렸다. 함께 달려도 나는 내 몫의 거리를 나 스스로 달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때론 홀로이고 때론 같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인간관계이다.
그렇게 시작한 마라톤 덕분에 나는 ‘마당을 나온 암탉’이 되었다. 마라톤 덕분에 닭장에서 ‘마당’을 살짝 보았다. 살짝 본 마당은 가슴을 뛰게 하였다. 마당을 보지 못하고 평생 알만 낳을 운명을 받아들였다면 어떤 꿈도 꾸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비쩍 마르고 털이 숭숭 빠진 한 마리 암탉이 꿈을 이루는 과정은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두렵고 외로운 길이다. 암탉은 마당 밖으로 나와서 어 멋있어지지도 더 행복해지지도 않았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아무래도 곤경과 재난을 만나기 마련이다. 그것이 두려워 마당 밖으로 나오지 않을 것인가?
벤투의 치명적인 단점은 새로운 실험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적 변화 없는 게임은 언제나 답답했다. 언제나 그 나물에 그 밥이었다. 어떤 선수는 혹사 논란에도 풀타임 출전시키고 나머지 선수들은 장거리 이동해왔는데도 기회를 얻지 못하기 일쑤였다. 과감한 실험과 모험 없이 발전을 기대할 수는 없다. 관전자들이 혁명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발전과 진보를 위한 최소한의 변화를 원하는 것이다.
다행히 이번 월드컵 결과가 좋았던 것은 이강인 선수의 라리가에서 활약이 워낙 빼어났었고 그런 이강인을 발탁 안할 명분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벤치만 달구고 있었다. 우루과이 전 초반에 결과가 좋았다면 기회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강인은 교체 되어 얼마 안 되는 시간에 그의 가치를 증명해 보였다. 그러고도 가나 전에도 벤치만 달구고 있다가 두골을 먹고 후반 교체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게임체인저가 되었다. 그가 선발 출장한 포르투갈 전에는 승리를 거두었다. 그런데도 브라질 전에는 선발명단에서 그가 빠졌다.
간혹 어떤 사람은 등장만으로 새 시대를 열어젖힌다. 신선한 상상력을 가지고 기존의 가치관에 의문을 던지는 신인류가 필요한 시점이다. 상생의 질서로 지구촌이 하나 되고 통일문화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과감하고 새로운 인재의 등용이 필요하다.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낡은 구체제 기득권 세력을 무너뜨리고 더 인간 중심적인 새로운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 혁신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래서 평화 전환기의 시대에 오드리 헵번 같은 캐릭터가 필요하다. 더 정확하게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의 오드리 헵번이 연기한 ‘홀리’이다. 원작자인 트루먼 카포티는 오드리보다 마릴린을 선호했지만 영화감독의 오드리 선택은 성공적이었다. 1950년대 미국에서 여성은 아직 전업주부로서의 삶을 찬미하고 동경할 때였다. 특히 결혼한 여자는 남편의 부속물이나 마찬가지 취급을 받던 시대였다.
오드리 헵번의 작은 얼굴에 크고 검은 색안경을 쓰고 민소매 원피스에 긴 목을 장식하는 크고 넓은 진주목걸이는 몽상가적인 자유분방함을 잘 표현하는 포스터였다. 사람들을 매혹 시켰던 오드리의 홀리 20세기 중반을 가르며 나타난 신여성이었으며 ‘신인류’였다. 그녀는 매혹적인 모습으로 여성에게 독립을 선사했다. 홀리는 사랑에 목숨을 걸지도 않고, 남편 등 뒤에 안주하는 삶도 거부했다. “티파니에서의 아침을 이전에는 나쁜 여자들만 섹스를 즐길 수 있었다.”라는 말도 있을 정도였다.
여성에게 자기 결정권이 없던 시대에 반항하는 홀리는 확실히 나쁜 여자였지만 시대를 바꾼 선구자였다. 이번 월드컵에서 벤투가 혹 좋지 않은 결과를 얻더라도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더 주었으면 관중들에게 더 많은 박수를 받았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소망하던 나의 ‘마당’으로 60이 가까운 나이에 나왔지만 그곳 역시 만만할 리 만무이다. 절름발이로 ‘평화’를 부르짖으며 달리는 나는 분명 ‘신인류’이다. 나는 최소한 소망을 가지고 실천하며 살아가는 떠돌이 암탉이다. 세상에 만만한 건 없다. 다만 근거 없는 자신감이 충만할 때가 있다. 어떤 난관이 닥쳐오더라도 이겨낼 수 있으리란 자신감 말이다.
강명구 평화마라토너가 평화달리기 72일차인 지난 11일 캄보디아의 한 마을에서 주민과 사진을 찍고 있다.(사진=강명구 평화마라토너)
강명구 평화마라토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