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크게 작게 작게 메일
페이스북 트윗터
(시론)내시 승극철 부부는 다산의 꿈을 꾸었을 겁니다
입력 : 2023-01-12 오전 6:00:00
아래에 펼쳐 놓는 시 한 편, 읽어봅시다. 몇 년 전 어느 겨울날, 싸락눈 내리던 때였습니다.        
 지금, 싸락눈은 분신과 같은 자식들을 낳고 있네./ 아내와 자식들과 함께 오래 살고 싶었을, / 지극히 평범한 삶을 꿈꾸었을,/ 내시들의 절박한 꿈의 축적인가. 혹은,/ 왕들의 비밀을 알면서도 간직해야만 했던/ 이승에 채 풀지 못하고 떠난 내시들의 슬픈 한풀이인가// 싸락눈은/ 
살아생전 받았던 벼슬은 무용지물이었다고/ 빗돌에 새겨진 직함을 덮어버릴 것처럼 쌓이고 또 쌓이고// 산 근처 아파트에서 산책 나온 수많은 불빛들이/ 이 산 구석구석에 남아 있는 사내들의 다산(多産)의 욕망과/ 몸을 섞으며 수다를 떨고
                                                 -「내시들의 무덤에 싸락눈 내리고」 전문
 
필자의 시집 『종달새 대화 듣기』(시인동네, 2022)에 실려 있는 이 시의 공간적 배경은 초안산. 서울 노원구 월계동과 도봉구 창동에 걸쳐 있는 해발 114m 정도의 나지막한 산입니다. 이 산이 갖는 지명도는 사적 제440호 ‘서울 초안산 분묘군’으로 지정되었다는 사실에서 비롯됩니다. 내시를 비롯한 궁녀 및 양반에서 서민에 이르는 1,000여 기의 조선 시대 분묘군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내시의 무덤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이 산에는 수많은 내시 무덤이 있었고, 일제강점기까지도 동네 주민들이 내시들의 제사를 지내 주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대부분 묘비가 없고 봉분의 흙이 깎여 나가 묘의 주인을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내시 승극철 부부의 묘. 나는 이 부부의 묘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동안 사색에 잠겼던 기억이 또렷합니다. 인용한 시는 이 부부의 묘에서 촉발된 것입니다.      
 
승극철 부부의 묘비에는 ‘통훈대부행내시부 상세승공극철양위지묘(通訓大夫行內侍府 尙洗承公克哲 兩位之墓)’라고 쓰여 있습니다. 승극철이 내시부 정6품 상세직(尙洗職)에 있었으며, 통훈대부(通訓大夫)라는 정3품의 품계를 받았던 인물이라는 뜻이 새겨진 것이지요. 그는 조선 숙종 때의 사람입니다. 
 
무엇보다 내가 관심을 갖고 본 글귀는 ‘양위지묘(兩位之墓)’. 부부가 나란히 묻혀 있다는 뜻입니다. 내시의 부부애를 엿볼 수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아기를 소망했던 그들의 염원이 읽힙니다. 죽어서도 같이 있고 싶어 하는 마음과 함께 현세에 갖지 못하는 아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내 가슴으로 감정이입 됩니다. 다산을 꿈꾸었을 겁니다. 문득, 출산율이 가장 낮은 나라가 된 작금의 대한민국 상황과 이 내시 부부의 꿈이 수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 여러 생각이 몰려옵니다.    
 
대한민국은 이제 분명한 저출산 국가입니다. 2022년 2분기 출산율은 0.75. 2분기 출생아 수도 처음으로 6만 명 밑으로 떨어졌습니다. “출산율 0.5까지 떨어질 것…앞으로 5년, 마지막 골든타임, 미래세대 희망 잃으면 공멸은 불가피”라는 어느 기사의 표현이 섬뜩할 뿐입니다.    
 
저출산이란 한 나라의 인구유지에 필요한 최소 합계출산율인 2.1명보다 더 낮은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합계출산율이 2.1명을 넘지 않고, 인구가 외부에서 유입되지 않으면 인구는 자연히 줄어듭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 스웨덴 등도 2010년대 후반 들어 이미 출산율 2.1이 붕괴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저출산 국가로 인식되었던 일본은 저출산이라는 말 대신에 소자화(少子化)라고 하는데, 2005년 1.26까지 떨어졌다가 2015년 1.45로 상승하였고, 코로나 시기였던 2021년에도 1.3을 기록했지요. 유엔은 일본의 출산율이 조금씩 높아질 것으로 예상하여, 2060년에는 1.5명대가 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놓고 있습니다. 
 
지금 이웃나라와 정반대의 상황이 대한민국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 저출산이야말로 대한민국 비극의 핵심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출산 예산은 13년간 무려 143조원을 썼습니다, 어디로 사라졌습니까. 그동안 수많은 저출산 대책이 쏟아졌지만 슬프게도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내시로 살아가면서 진정으로 아기를 갖고 싶어 했던 승극철 부부의 묘, 그 봉분 위로 분신과 같은 자식들을 낳고 있었던, 절박한 꿈의 축적으로 내렸던 그해 겨울의 싸락눈. 나는 지금, 그때의 싸락눈처럼 이 땅에도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봅니다.      

오석륜 시인·번역가/ 인덕대학교 비즈니스일본어과 교수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홍연 기자
SNS 계정 : 메일 페이스북


- 경제전문 멀티미디어 뉴스통신 뉴스토마토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