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최근 중소기업의 R&D(연구·개발)지원제도 혁신방안을 발표했습니다. 내용은 부채비율 1000%가 넘는 한계기업도 충분한 역량이 있다면 지원하며, 사업계획서의 분량을 줄이고 기술개발역량과 선행실적, 성과를 주로 보겠다는 것입니다. 성장성이 보이면 과감히 지원하며 당초 사업계획의 변경은 기관의 사전승인에서 기관에 사후통보로 바뀝니다. 과제수행이 어려우면 중단 가능하고 지원금 직접비는 자율집행을 허용합니다.
(사진=이의준 중소기업정책개발원 규제혁신센터장)
요약하자면 기업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고 문제가 발생할 경우 엄중히 처리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찬반양론이 있습니다. 그간 여러 문제의 발생으로 사전적인 요건을 정한 것인데 이를 "섣불리 느슨하게 하는 것 같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그간 산업과 기업의 특성과 환경이 바뀌었으니 "새롭게 한번 해보자"는 입장도 있습니다. 이번에는 후자를 택한 것입니다. 중소기업의 R&D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복잡한 절차나 지원요건을 완화해 중소기업의 연구개발 의욕을 고취하고 지원성과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특히 중소기업이 고충을 겪고 있는 사업계획서나 복잡한 서류의 작성과 제출의 간소화는 그간 지속적으로 요구돼 왔던 사항입니다.
특히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바로 서류의 간소화입니다. 정부과제의 신청단계에서 양식의 작성 못지않게 첨부서류도 복잡 다양합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자료에 따르면 신청관련서류가 29종에 달하며 작성하는 서류의 분량도 40여 쪽에 이른다고 하니 상당수 중소기업은 엄두 내기도 어렵습니다. 게다가 기본자격 증명 서류와 프로젝트 관련 서류도 제출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신용상태나 정보제공, 거래내역을 조회할 수 있도록 동의서를 제출해야 하고, 청렴서약서나 개인정보수집 및 이용 동의서도 제출합니다. 이들 서류에는 관련자 전원이 서명 날인을 해 이를 사진이나 스캔본으로 입력해야 합니다. 또한 통합관리시스템정보의 활용 동의서도 내야 합니다.
중소기업이 가점을 받거나 자격기준에 맞는지를 증명하는 추가서류 또한 많습니다. 기업의 대표자나 기업 자체가 인증을 받은 경우 각종 확인서, 증명서, 지정서, 인증서 등의 이름으로 발급 제출받는 서류가 무려 50여종 가까이 됩니다. 저마다 이유가 있겠지만 이 또한 내용과 양식, 분량, 난해한 용어 등이 중소기업을 힘들게 합니다.
가장 널리 사용되는 중소기업(소상공인)확인서를 비롯해 창업기업확인서, 여성기업확인서, 벤처기업확인서, 장애인기업확인서, 메인비즈확인서, 이노비즈확인서가 있습니다. 이러한 서류의 발급신청이나 관리도 해당 협회나 창업진흥원, 한국기업데이터 등 개별 기관에서 맡아 하고 있는데 무려 46건이나 돼, 과연 이러한 제도 역시 꼭 필요한 것인지도 의문입니다. 중소벤처기업의 경영활동에 필수적인 것인지 아니면 공급자의 편의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냉철히 따져봐야 합니다. 하나하나 서류발급을 위해 방문이나 요청서류를 보내는 번거로움은 기업의 경영생산성을 떨어뜨립니다. 그나마 전자정부의 실현으로 '정부24'의 '신청·조회·발급'에서도 각종 서류발급이 가능하며 중소벤처분야는 '중소벤처24'의 '증명서발급'에서 가능하게 됐습니다. 개별 기관의 홈페이지를 방문하지 않아도 출력이 가능합니다.
그럼에도 향후에는 이러한 서류를 일일이 제출받기보다 양식을 통합하고 기관간의 시스템 연동으로 기관이 직접 해당기관에 확인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특히 관행적으로 요구하는 서류나 서명날인은 온라인상에서 제출자의 ID와 고유번호 등이 나타나므로 반드시 필요하지 않아 보입니다. 유사중복 서류도 통폐합해야 합니다.
서류제출시기도 고려대상입니다. 중소기업에서 신청서를 제출하고 지원대상자로 선정되는 경우에만 모든 서류를 제출하도록 해야 합니다. 신청단계에서 온갖 서류를 제출하고서 탈락하면 그간 서류작성과 제출의 노력은 물거품이 됩니다. 탈락한 과제의 관련 서류는 제출한 측이나 받은 측 모두 불필요한 보관물이나 폐기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작은 중소기업에서 주주나 임원진 변동이 있으면 각종 등기를 위한 인감증명서나 회의록, 공증서류, 주민등록관련 서류 등을 준비 제출하는 것도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습니다. 과감한 철폐나 간소화도 필요합니다.
기업 활동에 저해가 되는 각종 규제를 혁파하는 데 가장 시급한 것은 '작지만 귀찮은' 번거로움을 해소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주기적이고 지속적으로 업무 프로세스를 점검하고 개인이나 기업의 편에 서서 개선하려는 의지와 실행이 수반돼야 합니다. 그저 시늉만 내거나 생색내기로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소리만 요란하고 실속이 없는 '규제 완화'가 반복돼 왔기에 각 부처의 장이 나서서 서류의 감소와 절차 단축을 위해 앞장섰으면 좋겠습니다.
이의준 중소기업정책개발원 규제혁신센터장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