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이태원 참사 희생자 분향소가 예고된 철거 기한을 넘긴 가운데 행정대집행 절차에 착수하겠다는 서울시와 지키겠다는 유가족이 맞서고 있습니다.
15일 오후 1시를 넘기며 서울시가 1주일 연기했던 자진 철거기한도 지났습니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 4일 유가족 측이 서울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하자 이를 무단·불법 시설물로 규정하고 두 차례 계고장 전달 후 이날 오전까지 철거하지 않을 경우 행정대집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이날 오후 분향소 앞에는 이전보다 배 이상 늘어난 경찰병력이 등장하며 현장의 긴장감을 높였습니다. 각 정당과 단체는 물론 일부 시민들까지 유가족들을 응원하기 위해 현장을 방문하는 등 일촉즉발의 상황이 오후 내내 계속됐습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 측이 15일 오후 서울광장 분향소 앞에서 서울시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박용준 기자)
유가족 "불법 건축물 아냐, 분향소 지킬 것"
유가족 측은 서울광장 분향소를 반드시 지켜내겠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15일 분향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의 위법 행정을 규탄한다”며 “서울시는 더는 위법한 공권력 행사로 이태원 참사에 대한 기억과 추모를 지우려 하지 말라”고 얘기했습니다.
유가족 측이 서울시의 행정에 반발하는 이유는 서울광장 분향소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상 집회 신고 의무가 없는 ‘관혼상제’에 해당한다고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관혼상제일 경우 집회 신고사항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대책회의 관계자는 “세종로에 분향소를 차리겠다고 서울시에 요청하고 협조를 구했는데 원천봉쇄당해 시청광장에 마련한 것”이라며 “분향소는 집회 신고사항이 아닌데 유가족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분향소를 불법 거치물이라고 얘기할 수 있느냐. 유가족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날 유가족 측은 서울시의 행정대집행 절차를 문제삼았습니다. 하주희 민변 사무총장은 “절차적으로 유족들은 합법적인 그리고 적법한 계고 통지를 받은 바가 없다”며 “이 곳을 지키기 위해 24시간 상주하고 있는 유족들을 몰아내는데 확정 판결 없이 대집행으로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유가족 측은 24시간 교대로 자리를 지켜서라도 서울광장 분향소를 사수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습니다. 그리고 서울시의 진정성있는 사과가 있어야만 대화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이지한 희생자의 아버지인 이종철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작년 10월29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한 우리 유가족들은 앞으로 시청광장 분향소를 지키기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며 “유가족들에게는 희생자들을 온전히 추모할 권리,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할 권리, 진정한 사과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 측이 15일 오후 서울광장 분향소 앞에서 서울시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박용준 기자)
서울시 "행정대집행 임박, 대화 시도는 계속"
반면, 서울시는 행정대집행을 예고하며, 그 전까지 합법적인 논의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유가족 측이 위법행정 논란을 제기한 것과 달리 서울시는 추가 계고장 없이 2차 계고장 전달로 모든 사전절차를 완료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일몰시간 이전이라면 언제든 행정대집행이 가능하단 뜻입니다.
다만, 현재 대화 자체를 거부당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하며, 소통채널을 열어둔 채 유가족 측과 새로운 추모공간 마련을 위한 대화를 시도하겠다는 방침입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민들이 충분히 인내하며 기다려왔다고 생각하는 만큼 부득이 행정대집행 절차에 착수할 수밖에 없다”며 “서울광장의 불법 시설물 철거를 전제로 합법적인 어떤 제안도 상호 논의할 수 있다는 서울시의 입장은 여전히 변함없다”고 말했습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 측이 15일 오후 서울광장 분향소 앞에서 서울시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박용준 기자)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