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홍연 기자] 사모펀드 운용사들이 침체된 공모펀드 시장에 속속 진출하고 있습니다. 사모운용사의 공모펀드 진출은 300조원 규모의 퇴직 연금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사전 포석입니다. 기존 공모펀드와 차별화된 서비스를 내놓고 있는 사모운용사들이 공모펀드 시장의 반전카드로 부상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300조 퇴직연금 시장 공략
28일 자산운용업계에 따르면 DS자산운용은 조만간 첫 공모펀드를 내놓을 예정입니다. DS자산운용, 더제이자산운용, VIP자산운용은 작년 하반기 금융위원회로부터 집합투자업(공모펀드) 인가를 승인받은 뒤 상품 설계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사모펀드 운용사들이 공모시장에 진출한 이유는 300조원 규모로 커진 퇴직연금시장 공략을 위해섭니다. 퇴직연금 디폴트 옵션 라인업에 들기 위해선 공모펀드에서 그간의 운용 성과 업력 등이 필요하고, 심사를 거쳐 등록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제반 사항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지요. 일반 대중들에게 인지도를 높여야 선택받기도 용이하고요.
한 운용사 관계자는 "공모펀드 레코드가 있어야 연기금 등 기관 자금을 더 수월하게 끌어올 수 있다"면서 " 현재 법적으로 퇴직연금 DC(확정기여형) 계좌에서는 사모펀드 투자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가장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공모펀드 시장이 갈수록 위축되는 상황에서 사모운용사들의 잇따른 공모펀드 출시가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을지 관심이 쏠리는데요. 공모펀드는 2016년부터 순자산 총액이 사모펀드보다 뒤처진 이후 힘을 못 쓰고 있어요. 공모펀드 순자산은 지난해 말 기준 전년 대비 28조9000억원(9.3%) 감소한 283조1000억원이었습니다. 반면 사모펀드는 568조1000억원으로 9.3%(48조3000억원) 증가했죠.
여의도 전경. (사진=홍연 기자)
상품 차별화가 성패 가를 듯
업계에선 결국 상품 차별화와 수익률이 관건이라고 보고 있어요.
한 운용사 고위 관계자는 "전문 사모운용사일 때는 원하는 운용 전략을 구현하는 데 제약이 많지 않았지만 공모로 진출하면서 제약 요건이 많아지고 공시 요건도 강화돼 힘든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공모펀드 시장에 정체된 상황에서 확실한 색깔을 보여주면 시장에서 자리잡는 데 도움이 되겠으나 전체적인 흐름이 ETF(상장지수펀드)로 오는 추세에서 고유한 전략이나 뛰어난 성과를 보여주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운용사 관계자는 "차별화 포인트는 각 운용사의 강점이기 때문에 잘하고 있는 부분에 대한 펀드를 주로 출시할 것"이라면서 "DS운용은 비상장투자 상품에, VIP운용은 가치주 운용에 강점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가장 먼저 공모펀드를 출시한 곳은 더제이자산운용입니다. 지난달 25일 첫 주식형공모펀드 '더제이 더행복코리아증권펀드'를 출시했어요. 정통 액티브 주식형 펀드를 표방하며, 사모재간접형이 아니라 별도 공모펀드를 따로 만들어 운용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회사 최고투자책임자(CIO)인 최광욱 대표가 직접 책임운용역을 맡고 있습니다. 지난 24일 기준 판매규모는 195억원입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액티브 주식형 공모펀드의 설정액은 지난달 2일 기준 15조2364억원으로 6년 전 31조4691억원과 비교해 2배 이상이 줄었습니다. 운용사 연간 수익률도 2021년 9.82%, 2022년 -23.55%로 썩 좋지는 않아요.
더제이자산운용 관계자는 "퇴직 연금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채권 혼합형 펀드를 낼 계획을 가지고 있다"면서 "중소형주에 특화한 펀드와 함께 시장 상황을 지켜본 해외주식형 펀드도 출시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VIP자산운용은 지난 13일 1호 공모펀드인 'VIP 더 퍼스트 펀드'를 출시했는데요, 출시 첫날 300억원 한도가 소진돼 조기 마감했습니다. 손실의 10%까지 운용사가 책임지는 손익차등 효과 적용이 차별화 포인트였습니다. VIP자산운용은 다음 달 후속 공모 펀드를 내놓을 예정입니다. 1호 공모펀드는 폐쇄·단위형 펀드로 적립식이나 연금 불입이 불가능했는데, 2호 공모펀드는 언제든지 설정과 환매가 가능한 장기 투자형입니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금실 선임연구위원은 "상품 유형과 운영전략이 기존과는 달라 가입자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오기 때문에 서비스 혁신이라는 면에서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면서 "전체적인 규모로는 갈 길이 멀지만 공모펀드 활성화 측면에서는 질적인 울림이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성과에 대한 평가는 적어도 한 사이클이 지나야 리스크와 리턴 관리가 잘되는지 볼 수 있을 것"이라면서 "운용사 선택과 전술적 능력을 단기간에 평가하는 것은 성급하다"고 말했습니다.
홍연 기자 hongyeon1224@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