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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섬 제주에서 바티칸까지-48)한국 사람은 역시 밥 힘
입력 : 2023-02-28 오전 6:00:00
손흥민이 토트넘 홈 구장 화이트레인에 멀리 한국에서 응원단이 와서 힘을 실어주면 이보다 더 기쁘고 힘이 날까요? 이강인이 마요르카 홈 구장 에스타디에 한국 펜들이 찾아준다면 이보다 기쁠까요? 아닐 겁니다. 광주의 김태원 씨 와 전주의 김안수 씨가 오늘 새벽 긴급구호물품을 바리바리 싸들고 거의 20시간의 여정 끝에 인도 북중부의 작은 도시 피테푸르에 피곤한 얼굴이 돼서 도착했습니다.
 
특히 김태원 씨는 남은 인도 일정 제 식사 문제를 해결 해주신답니다. 김안수 씨는 77세로 저와 띠동갑인데 저와 동반주를 해주신답니다. 전투력이 팍팍 살아납니다. 저는 지금 기뻐 뛰며 춤을 출 지경입니다. 지쳐가고 움추러들었던 몸과 마음의 말초신경이 살아나서 최고의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들도 내가 겪었던 문화적 충격을 똑같이 겪을 것입니다. 콜카타 공항에 내리자마자 탄 택시기사는 놀라움과 괴기스러운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입에 핏물 같은 붉은 액체를 가득 담고 입을 연신 오물거리더니 창문을 열고 각혈 같은 붉은 액체를 내뱉는 것입니다. 좀비 같은 것이 공포스럽고 오싹하기까지 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택시에서 탈출이라도 하고 싶었습니다. 길거리에는 빨간 핏물자국과 같은 얼룩이 여기저기 소똥과 함께 얼룩져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것은 씹는 잎담배라고 합니다. 씹으면 빨개진다. 말을 하거나 웃느라 입을 벌리면 쥐 잡아먹은 듯이 온 이가 빨갛게 됩니다. 그리고 피 같은 빨간 침을 길거리 아무데나 퉤퉤 뱉습니다.
 
소똥을 주물러 펴서 말리는 일은 주로 여성들의 아름다운 손으로 합니다. 소똥을 주무르는 여자들은 대부분 화려한 색상의 사리를 입고 금빛의 코걸이, 귀걸이 반지. 팔찌, 발가락 반지까지 했습니다. 소똥에다 찰흙과 지푸라기 같은 것 잘 섞어 반죽한 다음 부침개처럼 넓적하게 펴서 말려 땔감으로 씁니다. 쇠똥을 말려 건디기라고 부르는 땔감을 만듭니다. 아름다운 여자의 손과 쇠똥이라니!  한 달 동안 인도를 달리는 지금은 많이 편안해졌습니다. 그래도 적응이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전통이란 이미 과거의 것이 된 역사책이나 민속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도는 전통이 아직도 그들의 현재의 삶과 함께 갈아서 숨 쉽니다. 인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인도 여인들의 화려한 색상의 사리가 그렇고, 그들의 마을과 집에 꾸며져 있는 사원이나 신당이 그렇습니다. 양떼를 몰고 가는 할아버지나, 소똥을 말려서 이고 가는 여인들을 봐도 그렇습니다. 
 
인도에는 채식주의자가 많습니다. 식당도 채식과 비채식으로 나뉩니다. 인도에는 채식주의자 수가 전 세계 채식주의자 수의 50%를 넘는다는 건 인도에 와서 알았습니다. 인도가 소를 숭상하기 때문에 소고기는 못 먹어도 돼지고기는 중국에서처럼 마음껏 먹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왔습니다. 오답 투성이의 인생을 살았기에 그리 당황하진 않았지만 잘못된 계산의 대가는 큰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닭고기가 대부분 시골 식당에서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육식인데 그것도 향신료가 듬뿍 들어간 요리라서 나의 선택은 삼시 세때 ‘파니어 프라타’였습니다.
 
남자나 여자나 한결같이 무표정하면서도 상대가 어려운 모습을 보이면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순박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외국인에 대해서 상당히 호의적이기도 하고 관심이 많습니다. 내가 느끼기엔 필요 이상일 때가 많고, 다짜고짜 힌디어로 말을 걸어오면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뭐든 꼭 물어야 직성이 풀리는가 봅니다. 특히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에 왕방울만한 눈으로 빤히 한참을 쳐다보고 있으면 어떻게 표정관리를 해야 될지 쉽지 않습니다.
 
청결의 개념도 보통의 다른 나라 사람들과 달라도 한참 다릅니다. 인도사람들 큰 볼일 보고 나서 물로 씻는 거는 다 아는 사실입니다. 물로 씻어야 확실히 깨끗하다는 것이다. 그것도 손으로 닦아야 깨끗하다는 것입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맞는 이야기입니다. 비데로 씻어도 깨끗하게 잘 안 씻깁니다. 숟가락도 그렇습니다. 잘 씻어도 이사람저사람이 쓰던 것이 깨끗해야 얼마나 깨끗하겠냐는 것입니다. 차라리 손을 깨끗이 씻고 손으로 먹는 게 오히려 위생적이랍니다.
 
쓰레기를 뒤지고 다니며 어슬렁거리는 건 소나 개, 멧돼지, 염소와 왜가리와 까치들도 있습니다. 그 쓰레기를 아무데나 아무 생각 없이 버리는 건 정말 심각한 것 같습니다. 14억 인구가 나직 본격적인 소비시대로 들어서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지 이 인구가 소비 시대로 들어서면 이 쓰레기 문제는 정말 골칫덩이일 것입니다.
 
깨끗함과 더러움이, 질서와 무질서가, 깊은 명상과 소음이, 부유함과 가난함이, 서로 다른 종교가, 서로 다른 인종이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까짓 것 쯤이야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초연하게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법륜의 바퀴처럼 무리 없이 잘도 굴러갑니다. 서로 이질적인 것이 잘 조화를 이루며 살 수 있는 능력을 인간은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영국은 할 수없이 인도를 독립시키는 상황에서도 잔머리를 굴려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파키스탄과 인도를 분리 독립시켰습니다.
 
그때 간디의 판단미스도 한몫했습니다. 파키스탄 쪽에는 아무 자원이 없어 곧 제 풀에 꺾여 고개 숙이고 들어올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도와주어 오히려 파키스탄이 상황이 좋아졌습니다. 강대국들의 장난질이 결국은 분쟁의 씨앗이 된 것입니다.
 
‘상식’이라는 게 얼마나 부분적이고 객관적이지 못한 개념일 수 있는지를 뼈저리게 체험할 수 있었던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내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많은 것들, 그리고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많은 것들이 어떤 환경에서는 여지없이 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배우고 깨달았습니다.
 
자유로운 시간, 아름다운 자연환경, 새벽 끝이 없이 펼쳐진 유채꽃밭 위의 여명의 찬란함이란! 그렇지만 편하고 아름답고 좋기만 했던 여정은 결코 아닙니다. 이 아름답고 광활한 대지 위에서 내 자신이 그렇게 나약하고, 이기적이고, 닫혀있고, 겁쟁이일 수 있다는 것이 그대로 드러나서 화가 나고 스스로 실망스럽기도 합니다. 인도 여정은 이제 반 조금 더 왔지만 아직도 많은 생각의 실타래들이 풀리지 않은 채 남아있습니다.
 
길 위에 쓰러져 있는 소가 아기 소일까요? 그냥 친구 소일까요?니 살아남은 소는 자리를 뜨지 못하고 연신 쓰러진지 오래되었을 차가와진 소를 혓바닥으로 핥고 있습니다. 눈가에 맺힌 것이 눈물이지 눈곱인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 했습니다. 짐승도 죽음 앞에서는 저리도 엄숙하고 애처러운 것을!
 
오랜만에 밥을 든든히 먹었더니 몸이 전에 없이 가볍습니다. 한국 사람은 역시 밥 힘입니다.
 
강명구 평화마라토너가 평화달리기 141일째인 지난 18일 인도의 주민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강명구 평화마라토너)
 
 
강명구 평화마라토너
박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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