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준형 기자] 최근 일부 상장사들이 해외 기업과 양해각서(MOU)나 합의각서(MOA)를 체결해 광물 자원을 확보했다고 밝히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보도는 주가 급등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죠. 그런데 MOU·MOA 등의 협약은 구속력이 없습니다. 특히 해외 기업과의 MOU 체결의 경우 실체 확인이 어려워 투자자들의 주의가 요구됩니다.
보도자료로 배포되는 MOU·MOA 신뢰도는?
2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거래소는 2010년부터 상장기업들의 MOU 체결 공시에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상장사의 MOU를 명확히 믿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죠. MOU 공시가 주가조작 등 불공정행위에 수시로 이용됐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앞서 상장사들은 MOU·MOA 등의 계약체결 사실을 ‘자율공시’의 형태로 거래소에 공시했는데요. 공시가 막히자 보도자료 배포를 통한 인터넷 뉴스로 소식들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공시와 달리 제재도 적어진 만큼 호재성 자료는 더 노골적으로 변했습니다. 최근 보도된 MOU 기사들을 보면 ‘세계최초’, ‘순도 99.99%’ 등의 단어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일부 상장사들은 MOU·MOA 등의 호재성 자료를 배포하며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 사례 중에는 장외주식시장(K-OTC) 상장기업 인동첨단소재가 있습니다. 앞서 인동첨단소재는 130조원 규모의 볼리비아 리튬 조광권을 획득했다고 보도했는데요. 관련 보도 이후 시장은 인동첨단소재의 관련주 찾기에 나섰습니다.
파나진(046210)은 인동첨단소재의 2대주주와 경영권분쟁 중이란 이유로 상한가를 기록했고, 인동첨단소재와 MOU를 체결했다는 기업들도 급등했죠. 대표적으로 거래 정지 중인
한국테크놀로지(053590)가 있습니다.
다만 이후 볼리비아리튬공사가 이를 전면 부인하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인동첨단소재는 “볼리비아리튬공사와 직접 맺은 계약이 아닌 미국 기업과의 계약”이라고 해명했지만, 유성운 인동첨단소재 대표는 자본시장법 위반(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으로 구속됐죠.
인동첨단소재 볼리비아 리튬 광산 프로젝트. (사진=연합뉴스)
MOU 체결로 급등 후 '없던 일'…상당수는 '상폐'
일부 상장사들이 MOU·MOA 체결 보도를 통해 주가부양을 하고 있지만, 치명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MOU·MOA는 말 그대로 ‘양해’, ‘합의’ 사항일 뿐 구속력이 없어 본 계약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죠. 실제 과거부터 MOU 체결 이후 경기 불황이나 사업성 제고 등을 위해 MOU 체결을 ‘없던 일’로 만드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라정찬
네이처셀(007390) 대표가 설립한 알앤앨바이오(현 알바이오)는 지난 2010년 중국 광동성 소재 국공립대학인 광주의학원 제3병원과 성체줄기세포 치료센터 합작사업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고 밝힌 후 주가가 급등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식약처 승인 불발로 주가가 급락했고 결국 2013년 자본잠식으로 상장폐지 됐죠. 라 회장은 주가조작 등의 혐의로 구속됐습니다.
지난해 거래가 재개된
비츠로시스(054220) 역시 MOU 체결 소식으로 주가가 수차례 급등한 바 있습니다. 지난 2018년에는 비츠로그룹이 베트남 2위 국영은행인 베트남공상증권은행(비에틴뱅크)과 현지 인프라 개발 사업을 위한 MOU을 체결했다고 밝히며 주가가 한달 만에 두배 이상 상승했는데요. 1년도 안돼서 자본잠식 등으로 거래가 정지됐습니다.
서진오토모티브(122690) 역시 지난 2015년 중국 완성차 기업과 합자법인을 설립 소식에 4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 고점 기준 주가가 4배 가량 급등했는데요. 이후 현재까지 진행 사항에 대한 발표가 전혀 없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세력 놀이터…해외 기업 정보확인도 힘들어
인동첨단소재의 경우처럼 일부기업들은 MOU·MOA 등을 여전히 악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의 MOU 체결 공시는 2차전지 필수 소재로 통하는 ‘리튬’이나 ‘니켈’ 등의 광물이나 ‘희토류’ 등 첨단소재에 사용되는 희귀광물들이 주를 이루며 특정 ‘테마’를 형성하고 있죠. 그러나 공시로 이어지지 않고 호재 뉴스만 계속 나올 경우 의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코스닥 상장사 A사와 B사의 경우 필리핀에서 니켈 광물 추출을 위한 MOU 체결 소식을 전하며 주가가 급등하기도 했죠. 그러나 필리핀 기업의 경우 MOU를 체결한 기업의 정보조차 확인하기 힘듭니다. 필리핀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기업정보를 온라인이 아닌 필리핀 현지 문서배송을 통해서 제공합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MOU는 공시사항이 아닌 만큼 보도자료를 통해 배포되고 있는데 실제로 사업이 이뤄질지는 알 수 없다”면서 “투자자들이 외국 기업의 정보를 확인하기 힘든 만큼 이를 노리는 세력들도 있을 정도”라고 귀띔했습니다.
해외 자원광물 MOU 소식을 배포하는 상장기업들을 보면 사명이 자주 바뀌거나 적자기업인 경우가 많아 특히 주의가 필요합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007년부터 2011년까지 해외 자원개발과 관련 공시를 했던 28개 상장사 중 18개사가 상장폐지 또는 한계기업으로 지정됐습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기업의 보도자료 배포 등은 기업의 경영활동이기 때문에 제재할 수 없다”면서도 “MOU 활동이 모두 공시사항은 아니지만 강제이행조항 등의 계약이 걸려있는 등 기업경영활동에 중대한 사항일 경우 공시해야한다”고 밝혔습니다.
박준형 기자 dodwo9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