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코오롱, SK 등 국내 소부장 기업이 합심해 국산화에 성공했던 일본 수출규제 전략품목이 리스크에 놓였습니다. 정부가 일본 수출규제 완전 해소를 위한 대화에 나서 일본산 물량이 풀리면 기껏 늘렸던 국산화율이 역행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옵니다. 정부가 소부장 국산화를 위해 R&D 등 예산 투자를 해온 만큼 향후 국내 기업들이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도록 보호가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국가 산업의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소부장 국산화 기술이 자생력을 기르도록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관련 업계는 말합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코오롱인더스트리가 국산화한 불화폴리이미드는 디스플레이 소재 용도로 반도체 용도인 일본산과 다르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수급 문제가 발생한 제품과 물성이 달라 시장이 구분된다는 설명입니다. 불화폴리이미드는 일본 수출규제로 인해 정부가 수급 관리 및 국산화 기술 대응 전략을 수립했던 대표적인 3대 품목 중 하나입니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국산화 성공 후 중국에 수출하기까지 발전했습니다.
코오롱인더스트리 연구원이 필름 제품을 보고 있습니다. 사진=코오롱
마찬가지로 불화폴리이미드를 개발했던 SKC는 작년 말 필름사업을 사모펀드 운용사인 한앤컴퍼니에 매각하면서 함께 팔았습니다. 지금은 SK브랜드만 사용하는 한앤컴퍼니 산하 SK마이크로웍스가 불화폴리이미드 사업을 수행합니다. SKC의 경우 대신 일본 수출규제 전략 100대품목 중 하나인 블랭크 마스크를 자회사 SK엔펄스(구 SK솔믹스)를 통해 개발하고 있습니다. 현재 시험생산 단계입니다. 블랭크 마스크 역시 산업 전략적으로 국산화 중요도가 높아 업계가 개발 상황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일본산 대체 않더라도 국산화 성장 저해
또다른 3대 품목인 불화수소는 SK스페셜티가 기술 확보 후 생산 1년째에 접어들었습니다. SK스페셜티는 본래 SK머티리얼즈가 전신으로 투자 및 사업회사 분할 후 투자회사는 지주회사 SK에 흡수합병되고 사업회사가 남아 지금의 SK스페셜티가 됐습니다. SK스페셜티는 1년째 시장에 안착해 고객사로부터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어 일본산이 다시 풀려도 문제없다는 자신감을 보입니다. 반도체 공정상 생산라인에 적응시킨 소재를 다시 바꾸기도 쉽지 않다는 설명이 설득력을 더합니다.
하지만 EUV용 포토레지스트를 국내 최초 개발한 동진쎄미켐이나 앞서 SK마이크로웍스 등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기업들은 일본의 공세를 버틸 수 있을지 걱정됩니다. 당장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이 국산 소재, 장비를 일본산으로 다시 대체하지 않더라도 앞으로 국산 비중을 늘려갈지 의문입니다. EUV용 포토레지스트는 불화수소, 불화폴리이미드와 일본 수출규제 3대 품목에 속합니다. 동진쎄미켐은 기술개발 후 양산 테스트를 거쳐 삼성전자에 성공적으로 납품 중에 있습니다. 동진쎄미켐의 기술개발 사례는 정부(산업부)의 R&D 자금지원, 소부장 기업의 기술력, 수요기업으로서 소자업체의 양산평가 지원이 만들어낸 성공적인 민관협력 모델로 평가받았습니다.
이런 국산화 노력이 물거품이 되지 않으려면 정부 차원의 산업 보호 조치가 필요하다고 업계는 말합니다. 소부장 업체 관계자는 “정부가 직접 예산을 투자하고 국산화 기술 개발을 민간에 독려했던 만큼 보호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라며 “정부는 국내 반도체 제조사들과도 협의해서 지속적으로 국산 소재를 써줄 것을 요청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중소업체가 원청에다 우리 것을 계속 써달라고 요청하기는 힘들 테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일본, 과거 국산화 기술 죽이는 다양한 시도
수출규제가 풀려도 국내 소부장 업체 타격이 크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습니다. 또다른 소부장 업체는 “이슈 초기에는 일본 한군데서 소재를 공급받다보니 문제가 됐던 것”이라며 “어떤 회사들이든 거래선을 다변화하는 게 가장 큰 이슈다. 중국과 러시아 공급선 차질 문제도 있었고 일본도 그런 사례 중 하나인데, 규제 해제된다고 해도 고객사들 입장에선 공급망 다변화 구조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반도체 제조사는 “국산화했던 게 고품질 장비가 아니라 크게 비중을 늘리기 어려웠던 점도 있다”라며 “반도체는 공정상 일정 품질 수준이 유지돼야 하기 때문에 소재나 장비를 크게 바꿀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또 “일본 수출 규제가 됐어도 크게 타격을 입거나 생산 차질이 생겼던 것도 아니다”라며 “수출을 아예 하지 말라는 게 아니고 건건이 승인받으라는 것이었다. 현재 국산화 비중 자체가 크지 않고 그렇다고 일본 규제가 완전 풀린다고 다시 전량 일본 것을 쓰지도 않을 것 같다. 수급 안정, 다변화 측면에서”라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일본이 압박하는 수단은 다양합니다. 일본은 과거에도 국내 국산화 기술 개발을 막기 위해 단기적으로 소재 공급을 거부하는 등 압력을 가했습니다. 이를 못 이겨 국내 업체가 개발을 포기했던 사례도 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특수가스의 경우 일본 업체들의 가격경쟁력이 높아 타격이 생길 것이란 전망도 있다”라고 전했습니다. 일각에선 이번 일본과의 화해 무드가 미국의 권유에 의한 것이고 IRA 현안이 걸렸다는 견해도 보입니다. 미국과 IRA 문제를 못 풀면 산업계에 더 큰 타격이 생길 수 있으니 한국이 IRA 예외 규정을 더 받기 위해 미국이 권한대로 일본과의 협상에 나선 것이란 해석입니다.
앞서 정부는 한일 수출규제 현안에 대한 원상복구 협의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협의 기간 동안 일본 수출 규제 3대 품목에 대한 WTO 분쟁해결절차도 잠정 중단됩니다. 정부는 한일 양국이 수출규제 현안을 2019년 7월 이전으로 원상복구하겠다는 목표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정부는 일본측과 수출관리 정책대화를 조속히 진행해 수출규제 현안 완전해소를 추진한다는 계획입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