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마할로 세계인이 제일 많이 가보고 싶어 하는 도시 아그라로 향하는 길은 새들의 낙원입니다. 지난번에도 언급했지만 인도인들의 환생을 믿으니 나도 언젠가는 축생이 될 몸이니, 육식을 안 하고, 동물을 잡거나 괴롭히지 않습니다. 그러니 동물들이나 새들도 사람을 피하지 않습니다. 문득 여렸을 적 숲 숙을 헤매며 새알을 수집하러 다니던 악동시절이 떠오릅니다. 인도의 아이들은 어려서도 그런 놀이는 안 합니다. 그러니 동물들도 그저 사람과 가까이 삽니다.
동물원의 철장이나 조롱에 갇혀 있을 새들만 보다가 이렇게 탁 트여진 벌판에서 그런 새들을 보다니 정말 꿈같은 감동이 몰려옵니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고양이 걸음으로 살금살금 다가가서 천국의 선녀를 처음 만난 듯 경이로운 얼굴로 넋을 잃고 찬찬히 바라봅니다. 바라보면서 나는 또 한 가지를 깨닫습니다. 모든 사물이, 사람이 모든 날들이 어떤 장소에서 만나느냐에 따라서 새롭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인도에서 만나는 가축이나 야생동물에게서는 상위 포식자에 대한 두려움이나 긴장감보다는 평온한 숨결이 느껴집니다. 주변의 그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는 몸놀림이 여유롭기만 합니다. 공작새의 화려한 꼬리는 이성의 관심을 끌고 종족 보존을 하려는 본능이지만 포식자의 눈에 띄기 쉬워 야생의 생태계에서는 포식자의 공격의 대상이 되기 십상입니다. 공작새를 인도의 야생의 들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그런 안전성이 보장되어서가 일까 생각합니다.
나도 이 벌판에서 화려한 깃털을 활짝 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파랑색의 한반도 깃발을 꺼내 활짝 펼칩니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통일 한국의 모습은 공작새의 깃털에 비교도 안될 만큼 화려하고 눈부시게 펼쳐졌습니다.
이 벌판에서 아름다움을 뽐내는 새는, 우선 내가 이름을 아는 새만도 공작새, 앵무새, 크낙새, 지빠귀, 왜가리, 물총새, 왜가리, 까마귀 등이 있습니다. 이름을 모르는 신기한 새들이 즐비합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평원, 새들의 낙원에서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새들의 봄의 합창곡을 들으며 막걸리에 취한 듯, 자연의 평화에 취한 듯 황홀경에 취해 봄이 오는 인도의 벌판을 달려가니 이성과 마법이 하나가 됩니다. 어둠이 걷히는 순간 들판의 새들은 간절한 마음을 담아 노래합니다. 새들의 노랫소리는 봄이 되면 만물의 약동하는 리듬에 맞춰 비발디의 사계의 봄처럼 한결 경쾌하고 가볍습니다. 새들의 합창은 하늘이 주는 선물입니다.
무질서하게 지저귀는 것 같지만 유기적으로 완벽한 조화를 이룹니다. 새들은 제각각 노래하는 시간이 다릅니다. 해뜨기 전에는 종류별로 따로 솔로로 연주하다가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솟아오르는 순간부터 우렁찬 벌판의 합창을 부릅니다. 철없는 개가 가끔 멍멍 짖어 분위기를 깨트리지만 누가 뭐라 해도 아침 시간 들판은 새들의 시간입니다.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시간입니다. 동이 트기 전 솔로 파트로 노래하던 것이 동이 트면 합창처럼 다양한 소리가 일제히 한꺼번에 들립니다.
작은 새일수록 소리가 높아서 하늘로 솟는가 하면, 하늘의 은총과 축복을 가득 싣고 치솟아 오르면서 싱그러운 선율은 반복되고 변화하고 휘어집니다. 큰새의 노랫소리는 저음으로 땅으로 잠깁니다. 넓디넓은 들판에 새벽안개가 깔리듯 고요하고 청명한 소리로 나그네의 지친 영혼의 말초신경을 나도 모르게 자극하여 청명한 감정이 일어나게 합니다. 날아다니듯 금관악기의 소리처럼 가깝게 와 닿다가 첼로나 콘트라베이스처럼 금방 멀어지는 새소리에 어제의 고단함을 잊고 새 힘을 얻습니다. 음악의 효과는 우리 영혼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새들의 삶도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먼동이 터 오르고 하루가 열리면 부지런히 먹이를 찾아야 합니다. 저렇게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 목청 높여 노래하고, 짝짓기를 하고 새끼를 낳게 되면 새들의 활동은 더욱 부지런해야 하고 더욱 고단해집니다. 새들은 새끼에게 하루 백 번 이상의 먹이를 갖다 준다고 합니다. 그런 고단한 삶을 살면서도 새들은 내일을 염려하지 않고 노래합니다. 그 노랫소리에는 내일의 희망이 담겨있고 자신감이 담겨있습니다.
바로 옆에는 새들의 합창소리에 음률을 맞춰 감자를 수확하는 농부들의 일손에 바쁩니다. 14억 인구를 살찌우는 인도에 없어서는 안 될 식량입니다. 작고 못생긴 감자는 옆에서 노는 동물들과 새들에게 던져줍니다. 우리도 예전엔 나눠주고 남는 것으로 잘 키워서 사람이 먹는 것이 농사라 하였습니다. 그렇게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기에 위대함이란 없습니다. 다만 끝없이 이어지는 삶이 있을 뿐입니다. 가난하지만 기쁘고 자족한 영혼들의 아름다움만 햇살을 받아 반짝일 뿐입니다.
송인엽 교수가 아그라로 나를 맞으러 왔습니다. 여정의 딱 절반을 넘긴 시점입니다. 언제나 든든한 평화마라톤의 후원자입니다. 김태원 씨가 가지고 온 돼지고기와 쌀이 다 떨어져갈 무렵이었습니다. 인도인들의 별난 식습관 덕분에 인도에서는 본의가 아니게 육식을 거의 못한 터였습니다. 더구나 반가운 것은 그의 짐 속에 이기만 씨가 보낸 막걸리가 두 병이 다소곳이 들어 있었습니다. 5개월 만에 맛보는 그리운 맛입니다. 막걸리가 몹시 그리웠었습니다.
그러나 달리면서 힌두스탄 평원의 새들의 지저귐처럼 평화의 노래를 목소리 높여 부르는 것은 나에게는 막걸리 같아서 여정이 아무리 힘들고 고단해도 하루의 힘든 노동을 끝내고 마시는 막걸리처럼 피곤함을 잊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어디 고국에서 공수해온 진짜 막걸리 맛에 비할까요? 석 잔을 마셨더니 알딸딸해져서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잤습니다.
우리는 다시 어제 마친 자리로 가서 아그라로 들어오는 마지막 길을 같이 달리다 송교수는 바로 아그라 시청에 평화마라톤을 홍보하러 갔고 점심 때 쯤 연락이 왔습니다. 시장은 출장 중이고 대신 시의장이 평화마라토너가 유서 깊은 도시 아그라를 지나는 것을 환영하고 기자회견을 할 것이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아그라에서 꿀 같은 휴식을 위해서 2주 동안 쉬지 않고 강행군을 하였습니다. 몸은 지칠 대로 지치고 힘들지만 아그라 시청까지 마지막 힘을 내서 달려갔습니다. 아무나 강 옆에 타지마할은 세계곳 곳에서 온 관광객들로 앞을 뚫고나갈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조금 더 가니 무굴제국의 3대 황제 악바르가 만든 아그라 성이 갲지스 강의 지류 아무나 강가에 그 위용을 자랑하고 버티고 서 있었습니다.
개발을 이유로 숲의 나무는 베어지고 우리들의 친구들의 삶의 터전을 잃습니다. 어떤 길도 다시 태고의 세계로 우리를 돌아가게 인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누가 뭐라 해도 새벽은 올 거야. 누가 뭐라 해도 평화는 올 거야, 누가 뭐라 해도 새들은 노래하고 어둠은 걷힐 거야!
강명구 평화마라토너가 평화달리기 151일째인 지난달 28일 인도의 주민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강명구 평화마라토너)
강명구 평화마라토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