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을 띄워낼 게다.
봄바람 하늬바람 불어오지 않느냐
내가 지나온 발자국 위에
구름이 몰려와 비가 쏟아질 게다.
저 들판에 바람이 실어온 풀씨들
내 흥건한 땀으로라도 싹을 띄워낼 게다.
내 몸을 썩혀서라도 싹을 띄워낼 게다.
풀씨 향기로 피어나는 날
옆의 그 누구라도 부여안고
어화둥둥 춤을 출 게다.
그 향기 하늘 아래 가득히 퍼지는 날
부르튼 발 질질 끌면서
아름다운 봄을 노래 부를 게다.
신비한 나라, 낯설고 이색적이어서 충격을 안겨주었던,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친근감과 안정감을 주어서 마음을 텅 비우고 치유까지도 주었던 동화 같은 나라 인도입니다. 미지의 세계는 나의 인간적인 미숙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했습니다. 그러나 인도를 달리면서 나는 비 맞은 나무처럼 새싹이 돋았습니다. 새 힘을 얻었습니다.
인도의 마지막 구간인 파리다밧에서 뉴델리의 하늘은 화창하고 맑았습니다. 거리에는 아직도 홀리 축제의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습니다. 사람들 얼굴과 옷은 씻었지만 색감이 지워지지 않았고, 어느 도시나 그렇듯 도시의 길은 복잡하고 혼잡하여 길을 잃었습니다. 좁고 거친 길에 잘 못 들어 한 시간을 헤매다 겨우 빠져나와서 여유 있었을 시간을 늦을까봐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인도의 심장 뉴델리, 그곳의 중심 인디아 게이트에서 이번 여정의 여러 가지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인도한인회 박의돈 회장을 비롯한 여러분이 나와서 환영해주었습니다. 세계1차대전 때 영국군의 징집병으로 참전한 8만5천여 명의 희생자를 기리는 조형물입니다. 저쪽으로 대통령궁이 보인다. 광장에는 나들이 인파로 가득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 환영행사에 눈길을 주었고, 행사내용을 알고는 몰려와 박수도 치고 같이 축하하며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콜카타에서 뉴델리까지 거의 두 달간의 여정이었습니다. 오래된 제국의 유산이 많이 남아있고 세계 4대 종교인 불교, 힌두교, 시크고, 자이나교의 발생지이며 4대 문명의 발생지라 보고 싶은 문화유산, 신화와 오랜 이야기를 품은 들르고 싶은 곳도 많았지만 앞만 보고 달려왔었습니다. 내가 오로지 닿고 싶은 곳은 전쟁이 없는 세상, 서로 측은하게 여기며 상생공영하는 평화세상 이화세계이기 때문입니다.
다음날 오찬은 장재복 주인도대사가 초청해서 대사관에서 차담을 하고 중식당으로 옮겼습니다. 코스 요리를 주는 대로 남김없이 다 받아먹었는데 오랜만에 기름기 있는 음식을 포만감이 올 때까지 먹었는데 위장이 놀랐나봅니다. 배탈이 나서 밤새도록 설사를 했습니다. 그 다음날 달라이라마를 만나러 다람살라에 가야하는 계획을 포기하여야 했습니다. 10시간이 넘게 이 몸으로 험한 산길을 차를 타고 덜컹거리며 이동하는 것이 무리다 싶었습니다.
이어서 국문화원에서 한인회와 민주평통의 환영행사와 하소라 가야금 연주자의 연주회가 열렸습니다. 다음날은 Sigma Group 총수이자 주인도 명예총영사인 Jagdip Singh이 아그라 신문에서 내 기사를 보고 나를 꼭 만나보고 싶다고 대사관에 연락해서 오찬을 베풀었습니다. 국영TV방송 및 2개 민간 TV 및 다수 일간 월간신문사들을 초청해서 전 인도 육군 참모총장 등재계 인사들과 정계 인사들 우리 외교부 총영사를 비롯해 직원 6명과 한인회 임원 등 30여 주요 인사들에게 평화대장정을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하여 주었습니다.
나는 내 티셔츠에 새겨진 One World, One Korea, Only Peace를 보여주며 내가 달리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한 세상에 살고 있고 온 세상이 한 가족과 같으므로 남북한도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왜 통일을 해야 되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는 가족이 같이 살아야 하는 데는 이유가 필요 없습니다. 아버지는 북에서 내려왔고 어머니는 서울 사람입니다. 남북은 한 가족입니다. 그러나 이유를 대라면 수도 없이 댈 수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남의 기술과 북의 자원이 결합하면 한국은 금방 강대국이 됩니다. 그러나 나는 세계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기존 강대국이 아니라 서로의 다른 문화를 존중하며, 서로 돕고 상생하는 일에 앞장서는 강대국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남과 북이 통일이 되면 우리는 비행기를 타야 해외여행을 하는 게 아니라 고속열차를 타고 세계로 뻗어갈 수 있습니다. 등 등.
영미로 대표되는 서구문명이라고 말하는 자본주의의 선두주자들이 서서히 힘을 잃어 가고 있습니다. 프랑스와 독일이 주축이 되어 EU를 만들었지만 유럽 엘리트들의 새로운 시도가 됐을 뿐 시민들의 동력을 얻는데 실패했습니다. 통합은커녕 분리 시도가 늘어났습니다.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카탈루냐가 독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당연히 생겨나는 많은 문제점과 어려운 사람들을 충분히 배려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언제나 분쟁의 검은 그림자 속에는 그들의 또 다른 그림자가 어른거렸습니다.
세계는 이제 새로운 질서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제 세계는 단일 패권의 시대에서 다극화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앙숙이던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손을 잡았고, 올해 주요 20국(G20) 의장국을 맡은 인도의 목표는 “인류의 4분의 3이 사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의 목소리를 증폭시키는 것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탄탄한 경제 발전 성과를 발판으로 국제 외교 무대에서 근육을 자랑하며 개발도상국의 권익을 보호하겠다며 제3세계 국가의 리더를 자처하고 나섰습니다.
러우전쟁은 단순한 전쟁이 아니다. NATO와 러시아의 대리전입니다. 이제 필연적으로 일어날 대륙세력 중국과 해양세력 미국의 대리전이 일어날 곳이 대만인지 한반도인지 강대국들의 결정을 가슴조리며 기다려야만 할까요? 우리가 양극의 한가운데서 평화를 지켜내고 번영을 이루기 위해서는 강력한 주권의 바탕에서 어느 한 편에 속할 것이 아니라 양쪽의 협상의 중재자로 나서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평화와 번영을 누리고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것은 숙명입니다.
이제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정들었던 인도와 이별하고, 한 달 동안 식사와 건강을 챙겨주던 김숙 씨와 송인엽 교수와도 이별하는 순간이 왔습니다. 영원한 만남은 없습니다. 만남은 필연적으로 이별을 동반합니다. 또 다른 만남을 위해서 발길을 옮겨야 합니다.
강명구 평화마라토너가 인도 타지마할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강명구 평화마라토너)
강명구 평화마라토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