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크게 작게 작게 메일
페이스북 트윗터
무언
입력 : 2023-04-13 오후 4:30:37
10여 년 전 한 TV프로그램을 통해 처음으로 '무언가족'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게 됐습니다. 한자 뜻을 직역해 그저 말수가 없는 가족이겠거니 했지만 여러 회차에 걸쳐 방송된 내용은 꽤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무언가족은 다투는 가족보다 훨씬 더 위험한 가족으로 비춰졌다. 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 없이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는 시선과 무음만 고수했습니다. 가족 개개인이 쌓아올린 담이 너무 높아 가족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단절된 상태였습니다.
 
무언은 서로가 서로에게 지쳐 소통에 대한 기대가 완전히 사라질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미 헤어질 결심을 마친 연인이 이별을 고할 때 별다른 말을 남기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가족처럼 서로에게 신뢰를 주며 가까울 법한 사이도 봉합되지 않은 상처가 반복적으로 생기면 말을 삼키게 됩니다.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이들의 아픔을 끌어내고 해소하기 위해 제작진은 부모의 부모까지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려 용을 썼습니다. 
 
10년 정도 지난 지금, 무언가족은 사라졌을까요. 아니면 훨씬 더 늘어나고 현상도 심해졌을까요. 예상이 후자로 기울기는 합니다. 온라인이 보편화되면서 이제는 가족끼리의 갈등으로 인한 무언뿐만 아니라 여러 관계에서도 입을 다무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최대한 상사와의 대화를 피하기 위해 이어폰을 귀에 꽂는 직원, 전화통화를 기피하는 이들 역시 일종의 무언을 택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무언이라 하니까 며칠 전 인터넷 카페에 게시된 고민글이 생각납니다. 무언가족과는 상관이 없지만, 시한부 판정을 받은 이가 부모에게 자신의 투병상황을 알려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뒤 그동안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데, 이제는 치료를 위해 운전하기도 버거워져서 부모님께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글쓴이는 가족들이 충격을 받고 걱정할 것이 불 보듯 뻔하기에 말하는 것도 부담스럽다고 했습니다.
 
만약 내가, 혹은 가족이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어떨까 생각해봤습니다. 정말 무언이 답이 될까요. 그게 환자 본인의 마음의 짐을 더는 일일까요. 글을 본 이들 중 병으로 가족을 잃은 경험이 있는 이들은 말하지 않는 것이 답은 아니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남은 가족들도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이별이 훨씬 더 힘들고, 죄책감마저 든다는 이유에섭니다. 가족을 잃기 전 마지막을 함께할 수 있게, 후회하지 않도록 남은 가족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고 이들은 힘줘 말했습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어디까지 말하고, 어떻게 말하는가는 서로에게 주어진 평생의 숙제인가 봅니다.
 
변소인 기자
SNS 계정 : 메일 페이스북


- 경제전문 멀티미디어 뉴스통신 뉴스토마토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