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 안타까운 사고로 어린 생명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지난 8일 대전에서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 보행로를 걷다가 인도로 돌진한 차량에 치여 숨을 거둔 배승아(9) 양입니다. 9살 초등학생이 대낮에 친구들과 그것도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이런 사고를 당했으니 통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차량 운전자는 혈중알코올농도 0.108%로 면허 취소 수준의 만취 상태였다고 합니다. 한 언론을 통해 공개된 운전하기 전 CCTV 영상을 살펴보면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취한 모습으로 차량에 오릅니다. 저런 상태로 운전할 생각을 했다는 것에 분노를 넘어 황당하기까지 합니다.
특히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은 참으로 큰 문제입니다. 지난해 12월에도 서울 강남구의 한 초등학교 후문 앞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하교하던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 차량에 치여 숨졌습니다. 이 차량의 운전자 역시 혈중알코올농도가 면허 취소 수준의 만취 상태였습니다. 이번 사고와 장소만 다를 뿐 모든 부분이 똑같습니다.
이러한 사고를 막기 위해 어린이 보호구역 내 운전 부주의로 사망사고나 상해사고를 일으킨 가해자의 경우 가중 처벌하는 내용 등이 담긴 '민식이법'과 음주운전으로 인명 피해를 낸 운전자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고 음주운전 기준을 강화하는 내용 등을 담은 '윤창호법'도 생겼지만 비극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국가와 사회가 어린이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지 못하는 현실에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면목이 없습니다.
이번 사건이 이슈가 되자 정부는 부랴부랴 '어린이 안전 시행계획'을 내놨습니다. 학교가 희망하는 경우 담장이나 화단 등을 학교 안쪽으로 옮겨 이를 통해 확보한 부지로 통학로를 설치하고, 그렇게 하지 못할 경우 학교 주변 도로를 일방통행으로 지정하거나 등·하교 시간대 차량 통행을 제한하는 방안도 검토한다는 방침입니다. 이와 함께 어린이 보호구역 내 어린이 보호 설비 설치 여부도 점검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내용이지만 이 정도 대책으로 스쿨존 음주운전 사고와 같은 일이 다시 안 일어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관련 기사 작성을 위해 통화한 교육 관계자들 역시 정부가 매번 사고 발생 뒤 뒤늦은 뒷북 대책을 내놓는 것보다 학생들의 안전에 위협이 되는 요인을 미리 인지하고 조치를 취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앞으로는 '스쿨존 안전 펜스 덕분에 통학로를 지나가던 학생이 목숨을 구했다' 같은 기사를 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지난 11일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에서 만취운전 차량에 치어 숨진 배승아 양의 사고 현장인 대전 둔산동을 찾아 헌화 후 묵념하고 있습니다.(사진 = 뉴시스)
장성환 기자 newsman9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