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크게 작게 작게 메일
페이스북 트윗터
웃을 수만은 없는 거지방
입력 : 2023-04-19 오후 1:17:33
아침 출근길, 8시간 근무를 위해 콜드브루라떼를 구매하며 1000원을 지출했다고 했더니 '꼭 필요한 소비인가', '탕비실을 이용하라' 등의 훈수가 날아듭니다. 자신의 회사에는 탕비실이 없다는 말에 이윽고 회사도 거지면 어떡하느냐는 반응이 나옵니다.
 
거지방 채팅방 목록. (사진=카카오톡 오픈채팅 캡처)
 
또 다른 이가 보리차를 끓여먹기 위해 전기포트를 사도 되겠느냐고 질문합니다. 그러자 진지하게 고민하던 이가 전기포트는 물만 데우는 데 인덕션은 표면과 냄비까지 데워서 효율이 좋지 않으니 전기포트가 낫겠다는 조언을 합니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성행하고 있는 '거지방'의 모습입니다. 대화 내용을 살펴보면 용돈이 부족한 10대부터 학자금을 갚느라 힘든 대학생, 내 집 마련을 하고 싶은 직장인, 육아와의 전쟁 중인 부모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모여 있는 것 같습니다. 서로 통장 내역을 공유하며 자신의 잔고가 얼마나 부족한지, 왜 돈을 모아야 하는지 등의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
 
주된 목적은 자신의 소비에 대한 점검입니다. 소비를 줄여야 하겠다는 의식은 있는데 스스로 조절하기 힘이 드니 꾸지람을 자청한 겁니다. 사람들도 소비 하나하나에 반응이 격정적입니다. 웃음을 유도하기 위해 일부 과장된 모습도 있지만 자신의 소비처럼 신중하게 생각해서 답변하는 모습을 인상적이었습니다. 혹자는 돈 쓰면서 혼나는 재미도 있다고 하네요.
 
실제로 극단적인 절약을 하는 이들도 존재하는 이 거지방이 시사하는 바는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만큼 살기가 팍팍하다는 이야기니까요. 죄책감 없이 소비하던 것들이 검열의 대상에 오른 다는 점, 스스로를 거지로 칭하는 점 등이 아프게 다가옵니다. 물가가 가파르게 치솟고 금리도 높아지면서 부담을 느낀 이들이 소비라도 줄여보겠다는 일종의 '발악'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거지방은 순식간에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청년층 사이에서 먼저 무지출 챌린지가 유행하다가 거지방으로 확대됐습니다. 갈수록 소비가 금기시되고 터부시되고 있습니다. 한때 욜로족이 유행하던 것과 대비됩니다. 자잘한 소비에도 스스로와의 갈등을 겪어야 한다는 것이 어딘가 씁쓸합니다. 뿐만 아니라 절약을 통해 개인의 통장은 지키겠지만 그런 분위기가 확산하면 내수에는 또 악영향을 줍니다. 전반적으로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일정 부분은 재밌자고 만들어진 채팅방이지만 가볍게 만은 볼 수 없는 사회적 현상입니다.
 
변소인 기자
SNS 계정 : 메일 페이스북


- 경제전문 멀티미디어 뉴스통신 뉴스토마토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