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대한민국 복지 사각지대의 현실을 또다시 드러냈던 서울 창신동 모자 사건이 발생한 지 1년이 된 가운데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더 커지고 사각지대는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문가들은 기존 사회보장제도의 미세조정으론 해결이 힘들다며 대안적인 소득보장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한 주택 앞에 고지서가 꽂혀있다. (사진=연합뉴스)
창신동 모자 사건, 어느덧 1년
지난해 4월22일 80대 노모와 50대 아들이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허름한 주택에서 숨진 후 한 달여 만에 발견됐습니다.
각각 지병을 앓고 있던 두 모자는 수도요금을 6개월 동안 내지 못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지만, 낡은 집 한 채가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되지 못해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이외에는 정부로부터 어떠한 지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결국, 전기·수도까지 끊긴 상황에서 아들이 먼저 사망했고, 노모도 그대로 방치돼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수도사업소 직원들이 이들 집을 찾은 것은 이로부터 한 달이나 지난 후였습니다.
정부는 뒤늦게 수도, 가스요금 체납정보도 위기가구 발견에 활용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후에도 수원 세모녀 사건, 신촌 모녀 사건 등 연간 200조원이 넘는 복지 예산의 구멍은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서울 종로구의 한 골목길을 노인이 걷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새로운 사회적 위험 출현, 사각지대 증가
지난 21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미래 사회보장제도 방향 모색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복지 사각지대가 여전히 상당한 숫자로 추산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각지대(비수급 빈곤층)는 2018년 기준 132만명에 달합니다. 공적연금 사각지대에 납부예외, 장기체납까지 포함하면 약 400만명으로 추산됩니다.
김태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빈곤불평등연구실장은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가 돼서 많이 줄어들 걸로 예상을 하지만 최근 연구원에서 실태조사를 해보면 생각보다는 많이 줄지는 않았다”며 “실제로 국민들이 다가갈 수 있는 제도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130만에서 갑자기 10만명으로 줄어들거나 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햇습니다.
기존에는 빈곤, 실업, 노령, 질병, 장애, 사망, 폭력 등 전통적인 사회적 위험에 대비해 사회보장제도를 운영했습니다.
하지만, 2010년대 이후 청년, 불안정 고용, 고립·외로움, 우울·자살, 부채, 주거 취약, 학대·폭력, 안전 등 새로운 사회적 위험이 등장하며 사회정책에서 포괄하지 못하는 위기대상이 늘고 있습니다.
실제로 2019년 탈북민 모자 사망, 2020년 12월 보호종료 지적 아동 사망, 방배동 노숙인 발견, 2022년 탈북민 사망, 수원 세모녀 사망, 신촌 모녀, 창신동 모자 등은 새로운 사회적 위험이 복합적으로 나타난 사례들입니다.
빈곤층 갈수록 심화. (사진=서울시)
상향이동 감소, 양극화 갈수록 심화
한국사회의 과제 중 하나인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2020년 서울의 중위소득은 3779만원으로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으며, 전국 대비 높은 편입니다.
하지만, 속내를 살펴보면 기준중위소득 50~85%, 즉 저소득층의 하향이동확률은 증가하고, 상향이동확률은 감소했습니다.
기준중위소득 30~50% 빈곤층의 상향이동도 감소한 모습이었습니다.
기준중위소득 50% 이하를 빈곤 상태로 볼 때, 2020년 서울의 빈곤 진입률 3%는 전년도 1.9%보다 1.1%p나 늘어났습니다.
특히, 기준중위소득 50~85% 구간에서 빈곤 상태로 진입하는 비율이 크게 늘었습니다.
빈곤 상태에 놓이는 비율은 노년층, 1인 가구에서 많이 나타나며, 18~64세 근로연령층의 14.9%도 1년 이상 빈곤 경험이 있습니다.
지난 21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미래 사회보장제도 방향 모색을 위한 토론회에서 토론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서울시)
전문가들 "대안 사회보장제도 필요"
전문가들은 서울시의 안심소득, 경기도의 기회소득 같은 대안적인 사회보장제도를 모색할 필요성이 있다고 조언합니다.
특히, 이들 대안적인 제도 도입과정에서 단순히 소득 중심의 제도 설계를 벗어나 돌봄·주거·교육과 같은 사회적 지원과 연계할 필요성을 제기했습니다.
김 실장은 “안심소득이 의미있게 운영되고 있는데 근로요인의 문제를 없애려면 50%의 근로소득 공제를 일률적으로 할 게 아니라 대상자마다 다르게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나”라며 “최근에 새롭게 나타난 취약계층이나 사회적 약자를 보면 소득만으로는 부족하고 돌봄이 같이 들어가지 않으면 위기를 벗어나기 어렵다”고 덧붙였습니다.
변금선 서울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기존 제도를 미세 조정을 많이 해왔는데도 해결이 안 되고 있다는 것은 소득의 안정성을 획득하는 구조적인 부분에 대해서 충분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라며 “서울시에서 하고 있는 안심 소득 형태의 NIT형 모델을 통해 기존 제도의 경직성을 다 해결할 수는 없지만 시도해봐야 한다”강조했습니다.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