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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육군훈련병 고 노우빈은 나의 친구이다
입력 : 2023-04-28 오전 6:00:00
육군 논산훈련소에서 뇌수막염으로 사망한 노우빈은 나의 친구이다. 입대를 한 달 앞둔 그를 만난 자리에서 ‘훈련소 별 거 아니다’라고 말했던 것은 결국 거짓말이 되어버렸다. 이미 뇌수막염 환자가 인접 부대에서 발생했었고 노우빈 역시 증상을 호소했음에도, 훈련소 의무실은 타이레놀을 주며 돌려보냈다고 한다. 행군까지 참여하고 난 뒤 쇼크가 와서야 민간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소생하지 못했다. 2011년 4월 24일의 일이다.
 
큰일을 겪고서 으레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 직후 대국민담화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비극과 참사가 발생했다’고 했다. ‘일어날 수도 있는 일’과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의 차이는 무엇일까? 군대는 전쟁을 비롯해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는 조직이기에, 죽음 자체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일 수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은 모병제-징병제를 선택하는 문제나 절대적 반전/평화주의가 제기하는 문제를 넘어선다. 공동체를 위해 때로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희생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남은 자들은 그를 기리고 서로를 위로하며 남은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인간이 처한 피할 수 없는 운명인 것 같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은 그 다음부터다. 첫째, 공동체적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시민을 존중하지 않고, 그저 ‘병력자원’ 쯤으로 취급하는 제도와 관행이다. 부실한 군 의료 체계로 목숨을 잃은 사례는 노우빈을 비롯해 홍정기 일병, 최근 코로나19 감염 이후 혹한기훈련에 임했다 사망한 최민서 일병이 있다. 윤승주 일병과 이예람 중사 역시 괴롭힘이나 성폭력 등 군대 내에서 존엄을 침해당한 시민을 방치한 끝에 목숨을 잃었다는 점에서 여기 들어맞는 사례이다.
 
둘째, 사망자 예우가 부족하다. 흔히 군대는 특수한 조직이기에 구성원들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이 정당하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그 특수성에 맞게 군대로 ‘인한’ 사망 역시 폭넓게 인정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러나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한 사망이 군인사법과 시행령의 빈틈 때문에 순직으로 인정받지 못하곤 한다. 강제전역 처분되었던 변희수 하사의 자살, 선임들의 물놀이 강요로 사망한 조재윤 하사의 사례가 그렇다. ‘법치’의 정교함도 중요하지만, 군 피해 유가족들에게 순직 불인정 내지 순직자와 보훈대상자를 구별하여 ‘죽음에 등급을 매기듯’ 하는 절차는 또 다른 상처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셋째, 남은 사람들이 애도와 위로에 무능하다. 해당 부대가 사망사고를 은폐하고 진상규명에 비협조하거나, 책임회피를 위해 고인의 평소 복무태도나 ‘자살 징후’ 같은 것을 문제삼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 군 피해 유가족들은 빈소에서 ‘유가족 사열’에 대한 증언을 하기도 한다. 희생자를 기리고 가족들을 위로해야 할 지휘관들이 빈소에 와서는 오히려 가족들을 식장 밖으로 나오도록 해 사열하듯 마중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행과 행태는 진심어린 애도와 위로와는 거리가 멀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인 이유는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가능성 때문이다. 책임질 사람들은 반성과 사과를, 시민들은 애도와 위로를, 공직자들은 성실하게 개선책을 연구했다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을 일들이다. 앞으로라도 군 장병들의 헌신에는 합당한 명예가, 남은 사람들에게는 애도와 위로가 주어진다면, ‘인간의 조건’ 속에서 누군가를 떠나보내야만 슬픔이 조금이나마 가시지 않을까 바라본다.
 
노경호 독일 본대학 철학박사과정
 
권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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