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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왜 대형 사기가 끊임없이 발생하는가?
입력 : 2023-05-02 오전 6:00:00
전세 사기 피해가 끝 모르게 번지고 있다. 주택난이 심각한 수도권 일대에서 시작한 연립·다세대 빌라 전세 사기는 암세포처럼 전국 곳곳에 퍼져나갔다. 이른바 ‘빌라왕’들이 전국을 훑으며 작게는 수십 채에서 많게는 수천 채가 넘는 빌라를 사들여 전세 보증금을 사기 친 사건의 피해 규모는 엄청나다. 현재 파악된 피해액은 3000억원 정도이지만, 실제로는 3~4배 이상 더 많을 것이라 추정된다.
 
2020년 임대차 3법 시행 이후 아파트 전세값이 급등하면서 저렴한 빌라를 찾아간 수많은 청년과 서민들이 보증금을 떼어 고통받고 있다. 전 재산에 해당하는 보증금을 잃고 살아갈 길이 막막해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도 여러 명이다. 전세 사기 피해 방지 대책은 사후 약방문 격이며 사기범들은 여전히 잘 먹고 잘살고 있다. 
 
전세 사기 못지않게 주가 조작도 단골 사기 영역이다. 지금도 유명 연예인이 연루된 주가 조작 세력이 외국계 증권사를 끼고 유통물량이 적은 8개 종목을 3년에 걸친 긴 시간 동안 차액결제거래(CFD)를 이용해 통정매매하며 주가를 몇백 %씩 상승시키다 적발된 사건이 화젯거리다. 다단계 방식으로 모집된 투자자들은 1000여명이며 연예인, 기업인, 정치인, 공무원, 의사 등의 사회 저명인들을 망라한다. 투자자 피해 규모는 1조원 가량인데, 주가 조작 종목들이 연일 하한가를 치며 시가총액이 8조원 이상 감소한 것을 고려하면 선량한 투자자들의 피해는 예상을 초월한다. 뒤늦게 주가 조작을 포착한 금융당국이 강제 수사에 착수했지만 이미 피해가 크게 발생한 다음의 뒷북치기에 불과하다.
 
최근 몇 년 동안 뜨겁게 불어 닥친 코인 투자 열풍에 편승해 부실한 코인을 남발하며 사기 친 피해 규모도 천문학적이다. 수사당국은 2020년 이후의 코인 사기 피해액을 6조원 가량으로 추산한다. 코인 사기에 속아 투자금을 잃어 목숨을 잃은 사람도 수십 명에 이른다. 얼마 전 서울 강남 아파트 단지에서 발생한 청부 납치 살인사건도 코인 사기를 둘러싼 원한 때문이라고 한다.  
 
그밖에도 보이스 피싱, 펀드 사기, 다단계 사기 등등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사기 사건이 부지기수이다. 크고 작은 사기 사건이 매일같이 벌어진다. 참, 사기꾼이 많고 사기 수법도 다채롭다. 먹고 살기 위한 생계형 사기꾼은 애교에 속한다. 한탕 하여 큰돈을 벌려는 악덕 사기꾼들이 조직적으로 대형 사기를 치며 국가 재난급의 경제적 피해를 유발한다. 
 
우리나라 사기범죄 건수는 2020년 35만건으로 2011년 22만건과 비교하면 10년 사이에 60%가 증가하였다. 다른 나라에서는 ‘절도’가 범죄 건수 1위인데 한국에서 ‘사기’가 1위를 차지한다. 우스갯소리로 헌법 제1조를 ‘대한민국은 사기공화국이다’라고 고치자는 말까지 나온다. 대한민국의 대표 산업이 ‘사기산업’이라는 농담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왜 이처럼 사기사건이 많이 발생하는 것일까. 물질만능주의와 한탕주의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한국인이 특별히 돈을 좋아하고 한탕으로 쉽게 돈을 벌려는 성향이 높다고 볼 수 없다. 쉽고 편하게 돈을 벌려는 것은 인간의 속성이다. 총기가 널리 보급된 다른 나라에서는 사기 사건보다 강도 사건이 더 많이 발생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는 탐욕스러운 사기꾼이 판을 치고 활동하기에 좋은 여건이 조성된 것만은 틀림이 없다. 
 
전문가들은 법이나 제도보다 관계와 인정을 중시하는 한국적 문화에 원인이 있다고 진단한다. 대부분의 사기꾼은 아는 사람을 통하여 사기를 친다. 주가 조작이건 코인 사기이건 투자가를 모으는 과정은 다단계 방식으로 연고와 인맥을 이용한다. 즉, 관계를 이용해 사람을 유혹하고 돈을 모으는 것이다. 평소 잘 알지 못하는 생면 부지의 사람이 돈을 벌게 해주겠다고 접근하면 대부분 의심하고 경계한다. 그러나 친분이 있는 사람이 돈 버는 비법을 알려주겠다고 하면 호기심을 보이며 쉽게 넘어간다. 조건을 따지고 계약서를 작성하자고 하면 사람을 못 믿고 의심하는 소인배로 취급받는다. 
 
관계지향적 문화에서는 “집단에서 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FOMO)의 불안감도 작용한다. 주변에 아는 사람들은 다 부동산, 주식, 코인으로 돈을 벌었다고 하는데 자기만 안 하면 뒤처지고 낙오되는 것 같은 심리에 사로잡히게 된다. 사기꾼들의 고전적 수법은 고급 아파트, 수퍼카, 명품시계 등을 내세우고 돈 자랑하여 사람들이 꼬여 들게 만드는 것이다. 유명 연예인이나 유력 정치인을 간판 얼굴로 앞세워 사람들의 신뢰를 얻어내는 것도 사기꾼들의 전형적 술수이다. 문제는 이런 사기꾼의 말을 쉽게 믿고 넘어간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제도적 허점이 사기 행위를 방치하고 허술한 법망이 사기꾼을 방조하며 유명인과 전문가가 결탁하여 사기 규모가 대형화한다. 
 
단일 민족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같은 동포끼리 서로 먹고 먹히는 사기가 판을 치는 것이 참담하기만 하다. 참, 어디서부터 무엇을 고쳐야 대형 사기가 근절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권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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