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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거짓 선동과 민주주의 위기, 전·현직 두 대통령의 발언
입력 : 2023-05-03 오전 6:00:00
"인류가 민주주의와 함께 역사상 경험한 적이 없는 번영을 이루었지만, 포퓰리즘과 극단주의, 불평등과 양극화, 가짜뉴스, 혐오와 증오 등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지켜낼 방안에 대해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때입니다."
 
"세계 도처에서 허위 선동과 거짓 정보가 진실과 여론을 왜곡하여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들 전체주의 세력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부정하면서도 마치 자신들이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인 양 정체를 숨기고 위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두 인용문은 우리나라 전현직 대통령의 발언이다. 앞은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말인 2021년 12월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주재하는 ‘민주주의 정상회의’에서 했던 발언이다. 뒤 인용문은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미의회 연설에서 했던 것이다. 다음날 하버드대 연설에서 비슷한 내용을 담았고, 거짓 선동 등을 반지성주의로 비판했다.
 
물론 그런 비판은 두 대통령 스스로에게도 해당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당시 집권세력은 포퓰리즘과 선악의 진영정치로 비판받았던 당사자이다. 당사자가 제3자인 양 성토하는 것을 두고 염치없는 발언이라는 비판이 나올 만했다. 물론 포퓰리즘과 증오의 정치를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은 ‘민주주의 정상회의’ 취지에 합당한 내용으로, 민주주의를 퇴조시키는 요인들을 잘 지적한 것이었다. 대통령 퇴임 2개월을 앞두고서야 이런 문제의식을 던졌다는 점이 아쉬웠을 뿐이다.
 
‘민주주의 정상회의’는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2021년 취임하면서 트럼프 시기 미국 민주주의의 퇴조에 대한 각성과 더불어, 중국, 러시아, 북한 등의 독재국가에 대비되는 미국 주도의 민주주의 가치동맹을 주도하려는 전략으로 제안한 것이었다. 최근에도 바이든 대통령은 백악관 기자단 연례 만찬에서 거짓 뉴스보도로 1조원을 배상하게 된 폭스뉴스를 빗대면서 가짜뉴스 문제와 언론의 역할을 거론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허위 선동과 민주주의 위기 발언은 이미 우리 국내정치를 향해 몇 번 제기했던 바이다. 한국과 더불어 진영정치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는 미국, 그리고 민주주의 가치동맹을 두고 꺼낼 만한 내용이었다. ‘인권 운동가인 양 정체를 숨기고 위장하는 경우’ 등의 문구를 두고는 외교무대에서까지 국내 특정세력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민주주의의 위기 요인으로 말한 ‘반지성주의’는 지난해 대통령 취임사에서도 언급해 주목받았었다. “각자가 듣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고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검찰식 밀어붙이기는 설득과 공존이라는 민주주의의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 또 하나의 반지성주의다. 국민이 불신하더라도 내 식구는 등을 다독이며 버티게 하는 인사정책 또한 마찬가지다. 정치무경험의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개입해 정당민주주의를 위축시키고 있다면 더할 나위없는 반지성주의적 모습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기 말이 아니라 집권 중에 포퓰리즘과 증오의 정치에 대한 문제의식을 던졌다면 좋았을 것이다. 반지성주의를 비판한 윤석열 대통령은 이제 취임 1년이다. 반지성주의는 단지 비판 대상만이 아니라, 스스로 극복해야 할 실천과제이다.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의 지성주의는 겸손으로부터 나온다. ‘겸손한 권력’이라는 형용 모순 속에서도 성찰과 실천을 기대해본다.
 
김만흠 한성대 석좌교수, 전 국회입법조사처장
 
권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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