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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선언문 한 장에 도취어버린 정부와 여당
입력 : 2023-05-04 오전 6:00:00
한미 정상회담에서 나온 워싱턴선언을 ‘한국형 핵 공유’라든가, ‘한미 핵 동맹’이라고 말하는 건 넌센스다. 완곡하게 표현해서 “미국이 한국에 핵우산 제공을 문서로 구체화하여 대북 핵 억지력이 획기적으로 강화되었다”는 설명도 부적절하다. 이런 주장이 성립하려면 미국이 한반도 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새로운 전술 핵무기를 보여주어야 한다. 현재 미 본토에는 B-61b 중력 핵폭탄이 1백여발 저장되어 있다. 그런데 이 폭탄은 유사시에 미 본토에서 출격하는 전략폭격기에 탑재해야 하는데, 중국과 러시아에 의해 탐지되는 B-1B, B-52 구형 전략폭격기에 탑재한다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다. B-21과 같은 스텔스 전략폭격기는 아직 개발 중이며, 빨라야 2026년경에 실전에 배치될 모양이지만 이마저도 확실치 않다. 미군은 미사일이 일반화된 현대에 와서 항공기에서 직접 핵을 투발하는 전략에 큰 무게를 두지 않는다.
 
그렇다고 미국은 괌이나 오키나와와 같은 아시아의 미군 기지에 사전에 핵을 비축할 수도 없다. 아시아의 미군기지에는 핵 저장시설도 없고, 핵을 다루는 특수 인가를 받은 요원이 한 명도 없다. 아시아에서 핵확산은 미국의 국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이런 문제 때문인지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미 본토에 배치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사용하는 데 우리가 관여하겠다”고 했다. 미국 미사일은 북극 상공을 통과하여 북한에 접근하는데, 필연적으로 중국과 러시아 영공을 지나쳐야 한다. 이 역시 미국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미국의 핵 잠수함과 같은 전략자산이 직접 한반도 인근에 출동하여 핵을 투발해야 한다. 불행히도 미국은 항공모함에서 발사하는 핵 탑재 순항미사일이나,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전술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다. 미국의 핵 잠수함에 탑재되는 탄도 미사일은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수백 배 위력을 지닌 전략핵무기다. 역설적으로 한반도 전체를 초토화할 전략핵은 쓸 수 없는 무기다.
 
유감스럽게도 윤 대통령이 아무리 미국과 협의를 한다 한들 핵으로 북을 위협할 방법은 당분간 없다. 더구나 바이든 대통령은 “국제 분쟁에 있어 핵무기의 역할을 축소한다”는 입장이다. “핵 없는 세상”을 지향하는 바이든의 비확산 정책은 트럼프 시절에 개발되던 전술 핵무기 개발을 전면 백지화했다. 미국은 전술 핵무기라는 용어 자체도 “실전에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라며 거부한다. 만약 한국형 핵 공유나 새로운 핵 동맹이 성립되려면 미국은 핵 정책 자체를 바꿔야 한다. 아시아 지역에 핵을 전진 배치하거나, 전술 핵무기를 새로 개발해야 하는데 적어도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그럴 가능성이 없다. 그렇다면 이 워싱턴선언이 기존에 유지되어 온 “미국의 확장억지력 제공”과 무엇이 다른 것인가. 이에 대해 정부는 선언적 차원의 문서를 만들었다는 것 외에 어떤 근거도 제시하지 못한다.
 
핵 억제라든가, 핵 공유라는 개념은 절대 오남용되어서는 안 된다. 만일 이런 용어들이 실체도 없이 남발되면 정부의 안보 정책에는 신뢰와 책임이 실종되고 말만 앞세우는 허풍이 된다. 이런 허세는 적의 더 공세적인 행동을 촉발한다. 워싱턴 합의가 북한에게 공포를 강요하여 도발을 억제해야 하는데, 정부와 여당의 모호하고 부정확한 언사들에 북한은 속지 않는다. 벌써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워싱턴선언을 “빈껍데기”라며 조롱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선언문 한 장에 스스로 도취되는 행태는 안보를 직관하는 냉철함이 실종되었다는 뜻 아니겠는가.
 
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20대 국회의원
 
권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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