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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다시 5월, 담벼락에 대고 욕이라도 하자
입력 : 2023-05-09 오전 6:00:00
해마다 5월이 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올해로 서거 14주기를 맞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그는 임기 마지막 해인 2007년 유독 민주주의를 강조했다. 정권이 바뀌면 민주주의가 후퇴할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대화와 타협의 실질적 민주주의를 이룩하지 못한 데 대한 회한이 컸다. 5년간 그의 연설문을 쓰면서 그해만큼 민주주의를 자주 거론한 적이 없다. 그는 확신했다. 민주주의야말로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최고의 사상이며, 세상은 민주주의가 진전하는 만큼 발전할 것이라고 믿었다.  
 
민주주의 하면 떠오르는 말이 있다. 선거, 다수결, 삼권분립 등이다. 하지만 이는 민주주의의 본질은 아니다. 제도이고 절차이다. 노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핵심적 가치로 두 가지를 들었다. 다양성의 존중과 재도전의 기회 부여가 그것이다. 
 
민주주의는 다름을 인정하고 다양성을 존중한다. 사상과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 모두를 포용함으로써 공존과 상생을 추구하고, 자율과 창의를 꽃피우는 제도이다. 이것이 독재나 군주제, 공산주의와 다른 점이며, 우리가 민주주의를 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가. 대화와 타협의 민주주의는 실현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심각하게 역행하고 있다. 특히 며칠 후 취임 1주년을 맞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위험한 역주행이 계속되고 있다. 
 
자기와 생각이 다르면 온갖 수단을 동원해 배척하고 억압한다. 노선이 다른 사람과는 대화조차 하지 않는다. 포용과 통합의 노력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고, 거론조차 하지 않는다. 오직 배제와 공격만 일삼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우리 사회는 그나마 남아 있던 관용과 여유마저 소진해버리고 분열과 극단화의 늪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러면서 ‘자유’를 부르짖는다. 민주주의는 당연히 자유민주주의이다. 자유 없는 민주주의는 성립할 수 없기에 이제 누구도 ‘자유민주주의’를 말하지 않는다. ‘한국적 민주주의’를 말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민주주의는 또한 모든 사람에게 공정한 기회를 보장한다. 특히 누구에게나 재도전의 기회를 부여한다. 이번에는 졌지만 다음엔 이길 수 있기에 패자는 결과에 승복하고 승자를 축하하며 다음을 준비할 수 있다. 승자 역시 다음에 질 수 있기 때문에 겸손한 자세로 패자를 위로하고 다음을 대비하며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는 경쟁에서 낙오한 사람도 재기와 회생이 가능하도록 최소한의 삶을 보장해준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점입가경이다. 지난 1년간 승자의 아량과 겸손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오히려 패자가 다시 일어서지 못하도록 짓밟는 데 여념이 없었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과 가시적인 성과를 통해 국민의 지지와 성원을 받겠다는 마음도 없어 보인다. ‘약자 복지’도 구호에 그칠 뿐, 노동자, 장애인, 농업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포퓰리즘이라고 매도하며 외면하고 있다. 어려운 사람은 더 어려워졌고, 우리 사회는 점점 더 약육강식과 사생결단만이 난무하는 정글이 되어가고 있다. 
 
민주주의의 위기다. 14년 전 5월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내 몸 절반이 무너지는 느낌이다.’며 어린아이처럼 엉엉 우셨던 고 김대중 대통령. 행동하는 양심이 되자고 절규하던 그 시기보다 민주주의가 위태롭다. 
 
다시 5월이다. 담벼락에 대고 욕이라도 해야 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고,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만큼 우리는 불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강원국 작가
 
권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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