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일 저녁 여덟시에 제사를 지낼 겁니다. 십 주기니까 딱 한 번만 지낼 건데, 고리타분하게 제사상을 차리거나 하진 않을 거고요. 각자 그때까지 하와이를 여행하며 기뻤던 순간 등을 수집해 오기로 하는 거예요."
정세랑 소설 <시선으로부터>속에 '큰딸'은 특별한 제사를 지내겠다고 선언합니다. 엄마 심시선씨의 10주기를 기념해 그녀가 살았던 곳 하와이에서 제사를 치르겠다고요. 그런데 엄마 시선씨는 살아 생전에 제사에 대해 실랄하게 비판합니다. 미술가였던 엄마는 생전 인터뷰에서 제사는 악습이라고 주장하지요. 또 자기 자손들에겐 절대 내 제사는 지내지말라고 하겠다며 큰소리 쳤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엄마의 그딸일까요. 시선씨의 10주기 제삿상은 전과 과일, 생선 등이 차려진게 아닙니다. 각자 자손들이 그녀와의 추억을 떠올릴 무언가를 찾아와 올려놓습니다. 심시선씨는 생전에 결혼을 2번했는데 '피'로만 섞이지 않았어도 연을 맺은 가족들이 기억하고 추억하는 진정한 제사를 지낸 겁니다. 그리고 이 가족의 제사 주체는 아들이 아니었어요. 큰딸 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부모에게 제사를 드릴 수 있는 권리와 의무는 장남이나 장손, 즉 남성에게 먼저 주어진다는게 우리 대법원의 판단이었습니다. 적자에 남성이 없다면 서자의 남성이 제사의 주재자가 됐던 겁니다. 그런데 15년만에 성별이 아니라 나이로 우선권을 따져 남동생이 아닌 누나가 제사를 지낼 수 있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과거 판결이 성평등을 명시한 헌법 정신에 어긋났다는 반성도 함께요.
결국 제사는 아들이 물려받는다는 원칙이 뒤집힌겁니다. 대법원의 판단이 나오게 된건 2017년 사망한 A씨의 부인과 두 딸이 유해를 돌려달라며 소송을 제기해 시작됩니다. A씨는 결혼해 딸 2명을 낳았는데 이후 다른 여성 사이에서 아들을 낳아요. 그런데 A씨가 죽자 혼외자와 어린 미성년 아들이 유해를 납골당에 봉인합니다. 이에 부인과 딸들이 유해를 돌려달라고 소송하는데 1심과 2심은 기존 판례에 따라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2008년 11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공동상속인 사이에 협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적서를 불문하고 장남 내지 장손자가, 아들이 없는 경우에는 장녀가 제사주재자가 된다'고 판결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대법원이 15년만에 판례를 깨면서 덧붙입니다. "현대사회의 제사에서, 부계혈족이나 남성중심의 가계 계승의 의미가 상당부분 퇴색했고 추모의 의미가 더 중요하다"고요.
나이든, 성별이든, 적서자든 사실 그런 것보다 고인을 그리워하고, 추모하면 어떤 형식으로 지내든 그걸 통틀어 '제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도 다음달에 아빠 기일이 다가오는데 올해 제사는 아빠와의 추억을 더 되새길 수 있는 특별한 제사를 준비해봐야 겠습니다. 해마다 제사가 체질이라고 우스갯소리를 낼 수 있을 만큼요.
김하늬 법조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