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서울이란 개념을 처음 전파한 오 시장이 10여년 만에 돌아와 밀도있게 추진한 일 중 하나가 도시 브랜드 교체입니다. 1년여 간의 공모와 투표를 거쳐 새 브랜드 슬로건 ‘서울, 마이 소울’을 확정지었습니다. 투표인원만 역대 최대를 경신했으며, 디자인 작업을 거쳐 최종 발표만 남았습니다.
얼마 전 이 슬로건을 바탕으로 한 최종 브랜드 디자인 후보작 4개가 공개되자 분위기는 묘하게 흘러갔습니다. SNS를 중심으로 시민들이 불만과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대학생이 만들었냐”, “넷 중 뽑을 게 없다”, “우유업체 PPL인가”, “아이서울유를 데려와라” 등 우호적인 반응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물론 2015년 ‘I Seoul U’ 발표 당시에도 비판이 적지 않았습니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특정 가수가 연상된다” 등 시민·전문가 모두 혹평했습니다.
그래도 몇 년이 지나며 아이서울유의 인지도나 호감도도 제법 올라갔습니다. 서울 주요 랜드마크에 설치된 조형물은 관광객의 포토존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최종 브랜드 디자인은 세계 3대 디자인 상이라는 독일의 레드닷 어워드, IF 어워드, 미국의 굿 디자인 상을 모두 휩쓸었습니다. 외부기관에서 브랜드를 평가해 주는 상도 제법 탔습니다.
시장이 바뀐 이후 도시 브랜드 교체를 추진하면서 적어도 아이서울유보다는 나은 슬로건과 디자인이 나오길 소망했습니다. 누구보다 디자인에 대한 감각이 남다를 오 시장이 발표하는 브랜드 슬로건이라면 이 도시의 정체성을 제대로 담아내지 않을까 기대도 했습니다.
하지만 브랜드 디자인 후보들은 하나같이 기대 이하였습니다. 왜 4개나 후보가 나온 건지, 왜 후보작들마다 색깔이 다 다른지, 후보작들이 나타나고자 하는 서울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설명자료를 읽어도 도통 와닿지 않았습니다.
비전문가라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디자인 전문가들을 찾아 물어도 봤습니다. “선정 프로세스가 잘못됐다”, “퀄리티가 기대 이하다”, “전문가가 처음부터 다시 해야한다” 등 오히려 발언의 수위가 더 높아졌습니다.
듣고 보니 선정 프로세스가 아쉬웠습니다. 최종 브랜드 디자인 후보작 발표는 예정보다 1주일 가량 연기됐습니다. 최초 준비한 후보작이 서울시 내부 회의조차 통과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보완작업이 이뤄졌지만 일주일의 시간만으로는 수작으로 바꿀 수 없었습니다.
디자인 개발업체에 투입된 예산도 수천만원 선에 불과한 걸로 알려졌습니다. 시민 혈세를 낭비해서 좋을 일은 없다지만 적어도 십수년 이상 쓸 브랜드 디자인이라면 어느 정도 예산 투입은 불가피합니다. 아이서울유는 개발과정에만 5억원이 투입됐습니다.
시민들의 불만이 쏟아진 후 브랜드 디자인은 다시 시민 공모의 영역으로 넘어갔습니다. 서울을 사랑하고 디자인 전문성까지 갖춘 시민이 500만원의 주인공이 될 수 있지만, 이는 요행을 바라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디자인은 슬로건 아이디어와 달리 분명히 전문성을 요하는 영역입니다. 색상, 폰트, 점의 위치까지도 방향성과 의미를 가져야 하고 향후 활용방안까지 고려해야 하는 고난도 작업입니다.
작년 서울관광재단은 관광브랜드로 ‘마이 소울, 서울’을 발표하고 서울명예관광홍보대사 BTS와 홍보영상을 발표했습니다. 이 영상은 1억뷰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때문에 많은 시민들은 서울시의 슬로건을 보고 BTS를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뉴욕의 ‘I ♥ NY’, 암스테르담의 ‘I Am Sterdam’, 베를린의 ‘Be Berlin’처럼 십수년 이상 쓸 브랜드를 우리는 가질 수 있을까요? 관광브랜드랑 도시 브랜드는 달라야만 할까요? 한 달여 후 공모를 거친 디자인이 발표되면 그 때는 부정적인 여론이 사그라질까요? 이게 디자인 서울의 현 주소인가요?
최종 브랜드 디자인만은 다르게 나오길 응원합니다.
박용준 공동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