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다는 것은 얼마나 경이로는 기능인가요! 시신경과 뇌신경은 얼마나 유기적으로 잘 엮여 작동하는가! 한걸음 한걸음 나아갈수록 변화하고 새로운 전경들의 시시각각 변하면서 혼자 9개월 넘게 걸어도 전혀 외롭거나 심심할 틈이 없습니다. 엄청난 양의 빛과 공간이 눈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와 뇌신경의 사이사이에 저장됩니다. 나는 마치 치매예방에 좋다는 두 그림 사이에 다른 곳은 찾는 듯 자세히 관찰하며 이 마을 저 마을을 지납니다.
빨간 기와집들과 창문 안에 서성이는 여인의 그림자,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무수한 옹이가 박힌 올리브나무와, 이제 사랑에 눈뜬 지 얼마 안 됐을 연일들의 맞잡은 뜨거운 손, 전봇대에서 지저귀는 가련한 새들. 아스팔트 위에서 왈츠를 추는 봄 햇살, 공동묘지 위에 감도는 썰렁함. 시골 장터의 생기, 오토만제국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이슬람의 모스크와 가톨릭교회가 사이좋게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서 있는 것에 애정 있는 시선을 보내게 됩니다.
나는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과 교감을 합니다. 시선은 상상의 문을 활짝 열어줍니다. 나는 무엇보다도 봄의 수줍은 듯 연초록에 마음이 갑니다. 내리는 비와 굽이치는 강물을 보면 자연히 귀는 강물의 언어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그러는 동안 뇌의 회로는 복잡하게 움직이다 마침내 성난 파도를 잠재우고 무사히 트로이로 출항하기 위해 산 제물이 되어야 했던 아가멤논의 딸 이피게네이아를 떠올립니다.
나는 눈을 감습니다. 무능하면서도 정치적 야욕으로 가득 찬 인간 군상이 보입니다. 무능과 야욕에 만나면 시선을 왜곡시킵니다. 시선이 왜곡되면 말과 행동이 위험해집니다. 한 번도 삶에 진지해 본 적이 없고 사려 깊게 생각해보지 못한 자가 말만 많은 것은 위험합니다. 그런 자가 운 좋게 정치적 야욕을 채웠다면 그의 왜곡된 시선은 전쟁을 불러올 만큼 위험합니다. 온 민족을 불행에 빠트릴 만큼 재앙입니다.
알바니아의 풍광과 역사는 낯선 듯 익숙합니다. 산이 많고 돌이 많은 풍경과 우리 역사와 같이 비극으로 점철된 발칸반도의 작은 나라 알바니아는 연이어서 외세의 침략을 받았습니다.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400년간 받다가 잠깐 공화정이었다가 백성들의 삶은 전혀 관심 없던 대통령은 왕정으로 바꾸고, 독일, 이탈리아, 그리스 등으로 주인이 바뀌었고, 그에 따라 이탈리아의 리라가 새 화폐로 사용하다가 그리스의 드라크마로 화폐가 바퀴길 반복합니다.
독일군이 패망하여 떠난 후에 모두가 동등한 기회를 갖는 새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공산주의에 몰두하여 빨치산운동을 시작하면서 동족끼리 죽이는 살육전이 벌어집니다. 열정이 지나치면 시선에 백태가 끼게 되고 그런 왜곡된 시선도 민족들을 불행에 빠트리게 됩니다. 그러는 동안 국민들은 해외로 빠져나가서 알바니아 인구는 300만 명이 채 안 되는데 재외동포가 더 많다고 합니다.
“제기랄 또 전쟁이 터졌군. 이 나이를 먹도록 진정한 평화를 누리질 못하고 눈을 감게 생겼군!” 오래 살아 이 모든 비극을 겪어온 노인에 입에서는 한숨만 나옵니다. 그런 노인들에게는 전쟁은 그저 지루하고 답답한 하루의 연속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주변 사람들이 하나씩 죽어나가는 것을 무감각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마을사람들이 모여서 장례를 치러주는 초월적인 삶이 있습니다.
공습경보가 울리면 어디 으슥한 곳으로 피신하는 것이 습관처럼 길들여져 있습니다. 반공호 안에는 남녀노소와 이슬람교도와 기독교도, 신부와 매춘부가 같이 모여 배고프고 갑갑하고 불안한 공포를 나누었습니다. 불안은 나이와 신분을 불문하고 공평하게 사람들을 지배했습니다. 불안을 이기려고 사랑 없는 섹스를 하는 남녀가 있고, 철없는 아이들은 여전히 그 안에서 칭얼대고 싸우고, 젊은이들은 사랑하고 아이를 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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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이 떨어지는 동안 지축이 흔들리더니 모든 불빛은 사라지고 공포에 혼이 나가 처녀는 낯선 남자의 품에 파고들었습니다. 제정신을 지키기 힘든 극한의 상태가 지나고 이윽고 폭풍이 지나가고 고요가 찾아옵니다. 제정신을 먼저 차린 사람을 불부터 밝히고 처녀가 낯선 총각의 가슴에 안겨 있는 것을 발견한 어른은 아직도 제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처녀의 머리채를 잡고 끌고 갑니다. 다른 사람들은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느라 제정신이 아닙니다.
폭격이 지나간 다음에는 인간들이 불러일으킨 재앙의 흔적은 여기저기 생채기처럼 남습니다. 무력하지만 동시에 강인한 삶의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가공할 세계의 폭력에 맞서 투쟁하며 피 흘리고 넘어졌다가 들풀처럼 다시 일어서는 모진 삶의 흔적이 여기저기 있습니다. 알바니아인들은 강인한 반면 여전히 마법에 걸린 물건들을 두려워하고, 닭 뼈로 점을 치기도 합니다.
전쟁의 두려움으로 독재자 엔베르 호자는 조그마한 나라에 70만 개에 달하는 큰 벙커를 지었는지 모릅니다. 전쟁은 참으로 두려운 것입니다. 전쟁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세상 돌아가는 것을 응시해도 막아내기 힘든 것인데 왜곡된 시선으로 힘 센 개 한 마리 믿고 다른 힘 센 개 여러 마리에게 으르렁거려서야 어떻게 안전을 보장한단 말인가요.
뇌의 회로가 부지런히 움직이다 129년 전 백성이 주인인 세상을 만들려다 희생된 동학혁명의 영령들을 생각합니다. 독제정권의 강풍을 잠재우려다 청춘을 바친 수많은 이피게네이아들에게 잠시 머리를 숙입니다. 오늘도 광장에는 무모한 독제정권의 강풍을 잠재우고 전쟁의 광풍을 막으려 모여드는 끈질긴 이피게네이아의 행렬이 이어집니다.
강명구 평화마라토너가 평화달리기 209일째인 지난 4월 28일 주민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강명구 평화마라토너)
강명구 평화마라토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