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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반지성주의를 조장하는 사람, 누구인가
입력 : 2023-06-14 오전 6:00:00
내일은 '6.15 남북정상회담' 23주년이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향해 출발하며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로 회담에 임하겠다고 한 말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뜨거운 가슴은 통일을 향한 염원이나 동포애였으리라. 그로부터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 남과 북은 더 멀어졌다. 뜨거운 가슴은 오간 데 없고 꽁꽁 얼어붙은 머리만 마주하고 있다.
 
남북의 반목과 대치는 그렇다 치고, 국내 상황은 어떤가. 한마디로 최악이다. 정치권은 서로에 대한 앙심만 있다. 대화와 타협이 실종된 지 오래다. 정치가 국민에게 위로와 힘이 되기는커녕, 국민의 정신건강을 해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 뉴스를 안 본다는 사람이 너무 많다. 단지 관심이 없는 게 아니다. 정치를 혐오하는 수준이다.
 
혐오까진 아니어도 극단에 서 있는 사람들도 많다. 나는 이들이 극단에 내몰렸다고 생각한다. ‘집단극화(集團極化)’란 말이 있다. 집단의 의사 결정이 개인의 의사 결정보다 더 극단적인 방향으로 향하는 현상을 말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바로 이 집단극화 신드롬에 빠져 있다. 정치, 경제, 외교 현안 할 것 없이 중간은 없고 양 극단만 있다. 어느 한편에 서지 않으면 위험하다. 어느 쪽으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하고, 어느 한쪽에 서야 그들로부터 위로받고, 그들의 존재 자체가 위안이 되는 현실이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대화하고 정보를 공유하다 보니 생각은 더욱 공고화되고 확신은 신념이 된다. 그들 안에서는 보다 자극적이고 과격한 말, 상대방을 강도 높게 공격하는 발언이 환영받게 되니, 이들 생각은 더 극단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집권 세력부터 피아 구분이 엄격하다. ‘우리’ 아니면 ‘저들’이다. 그 사이에 ‘이들’, ‘그들’은 없다. 저들은 어떻게든 찍어내고 배제해야 할 대상이다. 윤석열 정부가 야당이나 시민사회, 노동단체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렇다. 대화하고 타협해서 함께 갈 생각 자체가 없는 듯하다. 지지층만 결집하면 된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는 지금처럼 공권력을 앞세운 행동들을 이해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대통령의 말에 통합이 없다. 당선 일성으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 대통령은 취임 이후 더 이상 ‘통합’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입만 열면 전 정부 탓을 한다. 일종의 편 가르기다. 속마음이야 어쩔망정 대통령의 말은 대립과 반목 대신 화해와 화합을 향해야 한다. 적어도 편을 가르고 분열을 부추겨선 안 된다. 
 
통합을 위해선 대통령부터 겸허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자신과 다른 견해나 상대편 얘기가 듣기 싫어도, 듣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아예 무시하고 대화 상대로조차 여기지 않으면 어찌 통합을 위한 걸음을 한 발짝이라도 뗄 수 있겠는가. 이도 싫으면 여당 안에 ‘악마의 변호인’이라도 둬서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말뿐 아니다. 사람을 쓰는 데도 통합은 없다. 이전 정부는 보수와 진보정권 할 것 없이 안배에 신경을 썼다. 이 정부에서 안배는 안중에 없다. 검찰 편중인사라고 하는데 편중 수준이 아니다. 독식인사라고 해야 마땅하다. 눈치도 보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만 보고 가겠다.’고 하는데, 혹여 그 국민이 자신의 지지층과 자기 사람들을 말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말했다. “지나친 집단적 갈등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고,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 
 
지금 누가 반지성주의를 조장하고 있는지.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는 없고, ‘뜨거운 머리’만 있는 것은 아닌지. 
 
강원국 작가
 
권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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