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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나는 나의 생각이 존중되는 곳에 살고 싶다
입력 : 2023-07-04 오전 6:00:00
나는 밥자리, 술자리를 참 좋아한다. 단순히 밥과 술이 좋은 것보다는 함께 식사를 하고 반주를 한 잔 할 때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생각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평상시에는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되어 말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서 밥자리, 술자리에서는 조금 더 부담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행복한 자리에서도 간혹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페미니즘 운동을 하는 친구들은 꼭 이러더라’, ‘어제 퀴어 축제 그거 참가한 애들은 참 그렇더라’, ‘어차피 환경 문제도 기술로 극복할 것이기 때문에 환경주의자의 생각은 고리타분한 생각이야’, ‘나는 OO한 주장을 하는 사람은 상종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와 같이 특정한 가치와 생각에 대해서 더 이상 논의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규정 짓고 비난하는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 역시 그 사람과의 대화를 거부하기도 한다. 이미 그 사람은 나의 생각을 존중할 태도가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한국에 민주화가 자리 잡은 이후 우리는 그 어떤 나라보다 선진적인 민주화 시대를 누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K-POP, K-Food 등 한국 문화(K-Culture)는 전 세계를 주름잡고 있고 전 세계가 한국 문화와 산업에 열광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한국에서는 유독 이념과 가치적인 측면에서 다양한 가치와 이념이 제대로 공존하거나 존중받지 못하는 것 같다.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빠른 경제적 성장, 그리고 다수의 희생이 있었지만 그 어느 나라보다도 급격하게 민주화를 꽃 피운 나라여서 오히려 더 그런 것일까? 경제 발전과 민주화라는 두 가치의 종과 횡의 이념에 사로 잡혀 이러한 이념을 넘어서는 다차원 측면에서의 다양한 가치에 대한 존중이나 이념적 발전의 모습은 거의 발견하기 어렵다. 오히려 요즘에는 산업화와 민주화로 나뉘어서 타인의 생각을 존중하지 않는 극단적 이념 대립의 모습만 보인다.
 
우리나라 정치계와 학계에서는 2010년 이후 마치 다들 경쟁하듯이 이미 성숙한 산업화 시대와 민주화 시대 이후의 한국의 시대는 무엇일지, 현재를 대표하는 이념은 어떤 것일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규정짓고 싶어 한다. 참 어려운 일이다. 이미 지나온 과거를 규정짓는 것이 아니라 지금 살고 있는 내 시대를 규정짓는 것처럼 어려운 것이 없을 것이다. 특히 먹고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던 1960년과 1970년대, 그리고 독재 정권에 맞춰서 민주화를 이루어 내고 싶은 1980년대의 경우 당장에 추구해야 하는 가치와 이념이 상대적으로 단순하였다면, 2023년 지금은 너무나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고 있고 경제와 민주라는 두 가지의 단순한 가치로 재단할 수 없는 복잡한 사회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시대의 이념과 가치를 확인하는 것은 더욱 힘들 수밖에 없다.
 
다만, 너무나도 명백한 것은 지금 이 시대는 매우 다양한 가치와 생각이 공존하고 있는 다원화된 시대라는 점이다. 이에 더하여 이젠 한국 역시 성장만을 위해서 앞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면서 다양한 시도를 하며 삶의 풍요를 누리는 것을 지향하는 사회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을 생각하면 지금 한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2차원적 이념적 한계를 넘어서, 이념과 가치적으로는 다원화된 사회를 지향하는 동시에 경제적으로 성장이라는 목표 지향적 태도를 극복하고 사회 안전망 구축을 통한 풍요로운 삶을 추구해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다원화된 가치에 대한 존중, 그리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사회 안전망 구축이 함께 이루어졌을 때, 내 삶을 내 가치관대로 내가 희망하는 대로 살아가는 자유주의적 가치와 서로를 존중받으면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화주의적 가치를 함께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이념에 구속되어 나의 다양한 생각과 이념과 가치가 제한되는 한국에 살고 싶지 않다. 나는 나의 생각이 존중되는 곳에 살고 싶고 자유롭게 내 생각을 펼쳐 나가고자 한다.
 
안희철 법무법인 디라이트 파트너 변호사
 
권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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