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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그렇게 해야만, 속이 후련했냐?(DLC)
입력 : 2023-07-05 오후 7:15:33
주의: 이 글은 크래프톤의 '칼리스토 프로토콜' 본편과 DLC로 나온 최종 결말을 다룹니다.
 
칼리스토 프로토콜. 이 작품은 사실적인 그래픽과 괴물 팰 때의 손맛이 일품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 이 손맛이 그리우면 실행해서 ’휙휙 깡‘을 합니다. 기억 나시죠? 왼쪽 오른쪽 피하고 전기 곤봉으로 깡깡깡.
 
저는 어제 이 게임의 문제가 패키지 게임의 미래를 결정하는 서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게이머들은 주인공 제이콥 리의 우주선을 망가트려 친구를 죽게 하고, 제이콥을 억울하게 옥살이 시킨 데다, 그의 교도소 탈출을 도운 동료 일라이어스 시신을 훼손한 뒤 혼자 차 타고 떠났던 다니 나카무라의 말도 안 되는 설정에 주목했습니다.
 
왜일까요? 다니 때문에 인생 종 치게 된 주인공이 너무나 쉽게 그녀를 위해 희생하니까요. 제작진은 이 여자의 동생을 숨지게 한 대규모 감염, 주인공 제이콥 리가 갇힌 블랙 아이언 교도소 감염 사태에 쓰인 바이러스 운반자가 모두 주인공이었다는 설정으로 엉뚱한 죄책감을 강요했습니다. 전에 말했지만, 쿠팡맨이 택배 상자 안에 뭐가 들었는지 어떻게 아냐고요. 그걸 뜯고 검사해서 운반 여부를 결정해야 하나요. 
 
칼리스토 프로토콜 결말이 담긴 DLC ‘마지막 전송.’ (사진=칼리스토 프로토콜 실행 화면)
 
본편에서 다니의 뒷목에 심어진 '코어'라는 장치와 연결된 제이콥이 그녀의 기억을 보고 "내가 막을 수 있었는데"라면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 황당합니다. 운송업자가 상자를 뜯어내 내용물을 분석해서 문제점을 발견해 세상에 알려야 했다는 논리인데, 어느 운송업자가 고객 화물을 이런 식으로 다룹니까.
 
제이콥은 본편 후반부에 다니와 합류하는데, 다니가 다른 괴물들처럼 ’바이오 파지‘ 감염 증세를 보이자, 그녀의 자살을 막고 해독제 구하는 데 안간힘을 씁니다. 다니를 격려하기 위해 ”거의 다 왔어“라는 말도 합니다. 이 대사 중요합니다.
 
본편 결말은 뻔합니다. 그간의 감염 사태 흑막은 인류 진화를 위한 유나이티드 주피터 컴퍼니(UJC) 소행이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제이콥은 거대 괴물이 된 간수장을 쓰러뜨린 뒤, 그 몸에서 추출한 액체로 해독제를 만들어 다니를 구합니다.
 
곧이어 제이콥은 무너져가는 감시탑에 한 대 남은 탈출정에 다니를 태우고 홀로 남습니다. UJC 악행의 증거인 바이오 파지 바이러스 보관 용기도 주머니에 넣어줬죠.
 
뒤따라 온 괴물들을 해치운 제이콥에게, 바이오파지 바이러스 사태의 공범인 말러 박사가 영상 무전을 보냅니다. "탈출 할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며 자신을 도와달라고 합니다. 곧이어 방금 전 쓰러뜨린 간수장이 얼굴을 들이밀고 포효합니다.
 
본편은 이렇게 끝나는데요. 저는 제작진이 DLC에서 망한 서사를 보완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지난달 29일 크래프톤이 출시한 진짜 결말 DLC '마지막 전송'은 정신적 충격으로 환각에 시달리는 제이콥이 '마지막 임무'를 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말러 박사가 집단 감염 사태 원흉인 UJC 악행을 고발할 파일 여덟 개를 찾고 있는데, 주인공이 이걸 도우면서 탈출 방법도 찾을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일단 본편 끝에 나타나 소리 지른 간수장은 제이콥의 충격으로 보인 허깨비였습니다. 이후 증거물 데이터를 찾는 과정에서 헛것으로 나타나는 괴물과 실제 괴물들이 뒤섞여 제이콥을 공격합니다. 이 때는 긴장감이 높아져 공포 게임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의미 없이 기어다니던 환풍구 통로에 이동식 전기톱 함정이 추가돼 오싹했습니다.
 
새로운 적으로 교도소 감시 로봇에 바이오파지를 섞은 '바이오봇'이 무력감을 안겨줬고, 새 무기인 키네틱 해머로 이 감염된 로봇을 줘 패는 재미도 있습니다.
 
DLC 후반으로 갈수록 제이콥 주변 벽과 바닥에 '싸우는 건 무의미해' '넌 이게 왜 보일까?' 같은 혈서들이 나타납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저는 제작진이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 주인공 아이작 클라크가 겪는 환각을 제이콥에 적용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칼리스토 프로토콜은 데드 스페이스의 정신적 계승작이잖아요.
 
그러나 바이오 파지에 감염돼 최종 보스로 등장한 말러 박사를 해치운 직후, 다시 말러 박사의 무전이 들리자 불안해졌습니다. 전투를 끝낸 제이콥이 문을 열자, 본편 시작할 때 불시착해 박살 난 제이콥의 우주선 조종석이 나타났지요. 제이콥은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조종석에 앉습니다. 그리고 우주선을 출발시키며 혼잣말을 시작합니다. "거의 다 왔어."
 
제이콥의 눈을 확대하던 화면이 깜박이자, 산소마스크를 쓴 제이콥이 다시 말 합니다. "거의 다 왔어···." 병원에 입원했나 보네요.
 
힘겨운 싸움을 끝내고 “거의 다 왔어”라고 중얼거리는 제이콥. 그리고 그의 눈에 빛을 비추는 말러 박사. (사진=유튜브 ‘Shirrako’)
 
그리고 초점 잃은 제이콥의 눈에 불빛을 비추던 말러 박사가 음성 기록을 시작합니다. 본편에서 우리는 다니와 제이콥이 코어라는 장치로 연결돼 서로의 생각과 기억을 읽을 수 있게 된 걸 알았습니다.
 
말러 박사는 제이콥을 이용해 여덟 개의 증거 파일을 다니에게 전송한 겁니다. 그리고 지금 컴퓨터가 전송을 마쳤습니다. 말러 박사는 "그의 희생을 기회로 바꿀 것"이라고 합니다. 희생이라니?
 
'전송 완료' 화면을 확인한 말러 박사가 뒤돌아보며 안쓰러운 미소를 지으며 제이콥에게 다가갑니다. "네가 해냈어, 제이콥."
 
말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눈 풀린 제이콥이 고개를 떨굽니다. 그의 오른쪽 머리는 폭발의 여파로 살이 타 없어졌고, 군데군데 뼈가 드러나 있습니다.
 
제이콥을 비춘 카메라가 멀어질수록, 그의 끔찍한 ‘희생’이 드러납니다. 양 팔이 날아간 데다, 배꼽 아래엔 늘어진 일부 내장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말러 박사는 다니에게 UJC 관련 파일을 보낼 수단으로 제이콥의 살아있는 몸이 필요했습니다. 이미 본편 마지막 장면에서 제이콥은 건물 자폭에 휘말린 채 혼수상태에 들어간 겁니다.
 
교도소 감시탑에서 제이콥을 찾아낸 말러 박사는 제이콥의 몸 곳곳에 생명 유지 장치를 심어 시간을 벌었던 겁니다. 제이콥이 DLC 진행 내내 들었던 말러의 무전은 뭐겠습니까. 말러는 제이콥이 완전히 죽지 않도록 말을 걸었던 겁니다. ‘마지막 전송’을 마칠 때까지요.
 
그리고 제이콥이 싸워온 대상은 무엇도 아닌 자기 자신의 죽음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곳곳에 쓰인 혈서가 ‘이 싸움은 무의미하다’고 경고한거죠.
 
무너져가는 실험실을 보면서 말러는 축 쳐진 제이콥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합니다. "이제 더 이상 싸우지 않아도 돼."
 
본편 흥행 실패가 확인된 지 반 년만에 나온 결말이 이러니, 개발사가 후속작을 포기하고 주인공을 죽이기로 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과연 본편이 흥행했어도 제작진이 이렇게 주인공을 비참하게 죽였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제이콥이 ‘희생’에 이르는 과정이 본편부터 억지였기 때문에, 그를 이런 식으로 죽인 스트라이킹 디스턴스에 화가 납니다. 이미 본편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헛것을 봤다 해도, 사지 멀쩡히 살아있는 상태로 환각에 사로잡힌 아이작 클라크처럼 만드는 선택지가 분명 있었습니다. 제작진은 데드 스페이스를 정신적으로 계승하는 대신 게이머의 정신을 파괴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희생을 기회로 바꿀 것"이라는 말러 박사의 대사는, 스트라이킹 디스턴스가 스스로에게 하는 말로 들립니다. 그래도 정 든 주인공이었는데, 어차피 이렇게 비참하게 죽을 주인공을 보려고 앞으로 '뉴 게임 플러스'를 누르려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물론 이 게임 자체가 사람들 관심에서 멀어졌지만.
 
그래도 한국 게임사가 대작 콘솔 게임 출시에 도전했고, 훌륭한 그래픽으로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 의미를 둔 이들이 있습니다. 그래요. 저도 한 번 믿어보렵니다. 하지만 아직도 묻고 싶습니다. 꼭··· 그렇게 죽여야만, 속이 후련했냐?!
 
이범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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