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크게 작게 작게 메일
페이스북 트윗터
악당은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
입력 : 2023-07-19 오후 4:31:57
수도권 한 중학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전교에서 한 손가락 안에 드는 성적을 내는 학생 A는 독서대회 시험지에 모두 오답이 적혀있다는 교사의 이야기를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답안지에는 A의 답 위에 오답이 덧입혀져 있었습니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습니다. 중학교 3학년 교실에서 독서대회 예선시험이 진행됐는데요. 예선을 거쳐 결선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둘 경우, 생활기록부에 가점(1점)이 되는 시험이었습니다. 
 
당시 C교사는 이 반에서 독서대회 예선시험을 치른 뒤 답안지를 바로 거둬가지 않고, 학생들과 함께 영상을 시청했는데요. 반장인 B에게 이 답안 꾸러미를 한시간 가량 맡겨두었습니다. 평소 A를 이기고 싶었던 B는 어두운 교실 속에서 A의 답안지를 꺼내 일부러 오답을 적었던 것입니다.
 
생활기록부에 반영되는 시험에서 학생이 다른 학생의 답안지를 조작했다는 사실이 교내에 알려졌습니다. 학교는 이같은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 쉬쉬하기 바빴습니다. 전교생이 아닌 해당 학급내에서만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가벼운 수준의 경고 및 안내만 이뤄졌습니다. 학교에서 분란을 일으켜봤자, 피해가 되돌아올 것이라는 걱정에 A의 부모도 이를 문제삼지 않았습니다. 피해자인 A는 B에게 사과 한 마디도 듣지 못했습니다. 
 
이 시험지가 공문서로 인정된다면 해당행위는 공문서위조가 될 수 있으며 업무방해죄가 성립될 수 있다고 합니다. 중3 학생은 촉법소년도 아니기 때문에 피해자가 경찰서 신고 후에 공무서위조나 공무방해죄가 적용된다면 검찰에 기소될 가능성도 있겠지요. 학교에서 이러한 문제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B의 생기부에는 이같은 내용이 적시돼, B가 원하는 외국어고등학교에 진학할 수도 없습니다. 학교 담당자들도 무사하지 못할 것입니다.
 
학교는 이같은 사실이 알려질까봐 두려워한다고 합니다. 시험을 감독했던 해당교사가 조만간 교감 승진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이를 문제 삼지 않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답안을 조작한 B는 평소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지닌 학생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문제가 공론화되더라도 B와 B의 부모가 이를 인정하고 사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고 우길 것이 뻔하다나요.
 
2024학년도 수능 대비 7월 전국연합학력평가가 시행된 11일 오전 울산 중구 중앙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을 치르고 있는 모습. 본문의 내용은 사진과 관계 없습니다. (사진=뉴시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두가 인정하는 모범생 A는 오답과 상관 없이, 예선통과 처리되었다고 합니다. 이를 알고 있는 이들 사이에서는 A가 보란듯이 1등을 해서 B의 코를 납작하게 해줘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고 합니다.
 
누군가의 인생을 좌우할 수도 있는 성적을 관리하는 학교의 시험체계가 이렇게 허술하다는 사실이 경악을 감추지 못하게 합니다. 이같은 사실이 드러나면 학교 해당 교사와 상급자들이 줄줄이 징계를 면치 못하겠지요. 학교가 이를 감추려는 이유일 것입니다. B학생 및 B의 학부모는 사안의 심각성과 중대함을 인지하지 못합니다. 누구도 이를 지적하고 사과를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B학생이 A의 답안만 고쳤을까요? 다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요. 하지만 무엇하나 명확히 드러난 것이 없습니다. 학교 측이 제대로 이를 조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B는 어떠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자신의 목표(외국어고)에 도달할 것 같습니다. 목적(외고 입시)을 위해 수단(범법행위)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B. 우리가 학교와 사회에서 배우는 도덕과 규범, 상식, 규칙을 깡그리 무시해버린 B. 그리고 이를 용인한 학교와 교사 집단. 모두가 공범입니다.
 
입시와 명문대 진학은 '합법'적인 계급 이동의 사다리라 봐도 무방합니다. 우수한 성적 획득과 특목고(명문대) 입학은 뼈를 깎는 노력과 인고의 대가로 얻어집니다. 그렇다면 그 과정은 무엇보다 공명정대해야겠지요. 이런 식으로 드러나지 않고 쉬쉬하며 묻혀버린 사고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이를 지켜보고 경험한 이들은 규칙과 상식을 지키고 살아갈 이유를 상실하지 않았을까요. 엄벌받지 않은 가해자들 은 앞으로 또 어떠한 비리와 부정을 만들어낼까요.
 
중학교에서 일어난 사소한 사건을 지나치게 침소봉대한다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작은 사건에서 느낄 좌절감과 무력감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평소 알고 있는 상식과 규범에서 한참 벗어난 이 일에 대해 해당학교의 학생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목적을 위해서는 범법행위를 해도 괜찮다?
규칙을 지키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
 
사회적 상식과 규범을 수십여년간 배워오고 체득해온 보통 사람으로서,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일반적인 규칙과 법이 깡그리 무시되는 것을 보고 혼란스러움을 감출 수 없습니다. 규칙과 상식은 지키는 사람만 바보가 되는 것일까요.
 
그래서 그런가요.
 
규칙을 지키지 않는 악당은
항상
이기더라고요.
 
이보라 기자
SNS 계정 : 메일 트윗터 페이스북


- 경제전문 멀티미디어 뉴스통신 뉴스토마토

관련 기사